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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이 궁금하다 - 이운진

섬진강이 궁금하다 - 이운진 섬진강에 가서 묻고 싶다 너의 하루는 어디까지인지 얼마나 긴지 너도 뒤돌아보면 멈추고 싶은 시절이 있는지 섬진강에 묻고 싶다 하늘에 닿지 못한 구름처럼 사랑에 닿지 못한 나처럼 너도 닿을 데가 없어서 흐르고만 있는 건지 먼 훗날 손목을 움켜 쥘 굽이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네가 지나온 시간의 간절함을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왼쪽 손목을 누르는 통증과 낡은 책과 씹어 삼킨 밥알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물살이 출렁 기우는 동안 너의 하루도 먼지가 되는지 나만큼 통곡하는지 꽃 피고 꽃 지는 자명한 봄날 섬진강이 궁금하다 *시집/ 모든 기억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문학의전당 봄날 - 이운진 누군가 내 마음 터뜨려 간밤에 떨어져 내린 꽃잎처럼 가슴에 화르르 멍이 들면 봄길을 가다가도..

한줄 詩 2021.04.01

새점을 치다 - 안채영

새점을 치다 - 안채영 길모퉁이를 구부려 그 위에 앉아 구부러진 모퉁이로 날아가지도 못하는 새를 데리고 새점을 치는 사람이 있다 모퉁이 저쪽에서 점괘가 적힌 종이가 뽑혀지고 뾰족한 부리만 있는 날개가 없는 단촐한 점괘(占卦) 운세를 두고 나온 여행이었다 드나드는 문에서 모든 날개를 뽑아버렸다 부리에 갇혀 날아가지 못하는 괘(卦)에 콕콕 쪼이는 날이다 운세에 붙들린 사람들 몇이 모퉁이처럼 구경하는 새의 불안한 적중 운세를 다 퍼먹어도 흔들리는 봄 날개가 뽑혀져나간 파닥거리는 괘 하나가 아직도 뜨거운 이마를 짚고 있다 허술한 주둥이에서 쫓겨나온 목록이 펴진다 뒤적거리는 표정으로 안부는 온다 오후 근처의 점통(占桶)에서 밀린 운세를 들고 나가는 특이 사항 없는, 누군가 나의 운세를 모자처럼 쓰고 모퉁이를 돌아..

한줄 詩 2021.04.01

4월의 부사(副詞) - 천수호

4월의 부사(副詞) - 천수호 겨울에도 은행나무는 저기 서 있었다 뜨거운 입김이 잎으로 맺히는 부끄럽지 않는 4월이 올 때까지 여전히 순결 정결이라는 첫 잎의 열렬함으로 그 겨울 맨살의 부끄러움을 감추기에는 아직 잎부채가 너무 작다 과연, 가장, 매우라는 부사가 겸손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순백, 순수, 순정 이런 말놀이나 하면서 잎의 말을 열거하고 있다 4월이 더 분명해지는 이런 명사들은 신파였으므로 군데군데를 깁는 부사처럼 잎이 난 자리마다 봉합 흔적이 있다 4월의 감탄사는 어디로 발송하려는지 가지 끝 허공 한 자락에 은행잎 우표를 붙였다 뗐다 한다 열렬과 비열을 차례로 헤아리며 이파리 점괘를 짚는 것도 겨울나무에서 봄나무로 건너오는 신파의 방식이다 이 나무의 문장에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될 부사 ..

한줄 詩 2021.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