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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그럴 때가 있잖아요 - 최세라

우리도 그럴 때가 있잖아요 - 최세라 소외에도 순서가 있었다 장애인 먼저, 그리고 노인과 병자 나는 죽어서 장례식장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질투했다 짐짝을 밀며 절뚝절쭉 화물용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메마른 뺨 같은 흙부스러기를 껴안고 문장 속을 내달리는 잡초의 군락지들 곳곳에 있었다 계절도 타지 않았다 생육조건이 같다는 이유로 잡초의 군단을 이루고 있는 나도 아버지 당신도 잡초였습니까 이따금 서광꽃 노을 빛이 물속으로 흘러들었다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귤빛이 조금 옷게 만든다지만 이유없이 절실해지는 날은 내가 내 인생의 악역 배우라는 생각 그래서 어쩌면 물 속에 들어앉아 천장이거나 바닥이거나 몸을 빈틈없이 두르는 벽이거나 자루인 흐린 물 속에 들어앉아 당신을 잃었을 때 들려 오던 약한 맥박을 한 번만 다..

한줄 詩 2021.04.10

불편으로 - 이규리

불편으로 - 이규리 ​ 불빛을 좀 낮춰주세요 내가 아프니 그들이 친절해졌는데요 그러지 말아요 아픔을 가져가지 말아요 만나는 사람들 저마다 상처받았다 받았다 하니 상처가 사탕인가 해요 태생들은 불편이었을까요 불편을 들이며 그만한 친구도 없다 생각했는데 이게 그거 별일 아니라는 듯 별이라 불러보려 했는데 그 별 다치게 한다면 멀게 한다면 일찍 늙어버린 사람 마치 그러기를 바란 사람처럼 별과 별 사이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다고 그랬을까요 손톱에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한 생각을 물어뜯도록 괜찮아요 절룩이며 여기 남을게요 불편이 당신을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끌 수 있다면 별을 헤듯 그래요 여기 남아서 말이죠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역류성 식도염 - 이규리 뭔가 하면 할수록 비천해갔다 밤의 이야기들..

한줄 詩 2021.04.09

금요일은 분홍이다 - 이강산

금요일은 분홍이다 - 이강산 한나절 마늘 꼭지를 따고 깜박, 사람을 못 알아보는 동춘요양원 601호실 정옥연 씨에게 바나나를 까주고 한나절은 옥천산방 꽃밭에서 홀로 지내고 바나나 껍질처럼 물러터지다가 쥐똥나무 열매처럼 까맣게 오므라들다가 이젠 죽음 말고 아무 할 일도 없는 정옥연 씨처럼 휘청휘청 삼청저수지 둑길을 걷다가 어제의 직진은 버리고 우회하다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불현듯 나의 좌표가 궁금해져 삼청제(三淸堤)라 하려다가 가로등 1-546, 하려다가 어젯밤 삐끼 노파 모르게 사진 찍은 수도여인숙으로 하려다가 산방 아래 외딴집 복숭아꽃으로 한다 맨발로 달려드는 분홍으로 한다 *시집/ 하모니카를 찾아서/ 천년의시작 목련 주사(酒邪) - 이강산 반나절 봄비 마신 목련의 치아가 하얗다 입술 틈새 봄 ..

한줄 詩 2021.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