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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을 통과하는 소란 - 최규환

허물을 통과하는 소란 - 최규환 어둠끼리 살을 맞대고 온전한 무엇에 기댈 때 온기를 품은 매미 소리는 누구의 허물을 받아내는 목청일까 아무도 없고 어느 누구도 있으면 안 되는 새벽 정거장 실개천을 뒷목에 감춘 섬뜰교 너머엔 고요가 남긴 슬픈 뒤태로 서성이다가 오늘에서야 내 눈에 들어찬 풍경을 펼쳐 들었다 팔자에도 없는 몸이 뒤엉켜 목불좌상(木佛挫傷)의 염주를 꿰고 있던 매미는 우는 방향에 맞춰 허물이 깃든 내연의 짝을 이루고 있다 사랑에 실패한 울음이었다가 고비를 넘나드는 밤이 오고 한세상 떠메어 흐르다, 경계를 허물며 읊어대는 경전(經典)을 펼쳐놓은 것인데 슬픔도 한 밑천이라서 몸을 헹구는 적막으로 왔다가 다른 세상을 잇는 들끓는 소리로 죽음도 불사하고 빛나는 저, 바스러지는 소란 *시집/ 설명할 수 ..

한줄 詩 2022.07.26

막창집 - 김륭

막창집 - 김륭 영원, 이라는 말을 구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팔라진 숨들이 장례식장 화환처럼 묶인 곳, 내가 웃으면 바람이 따라 얼굴을 질겅거리며 들어설 것 같은, 여기서는 밤도 문상객이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자연도 아니고 과학도 아니어서 울음마저 질겨서 한 번 더 영원이 시작되는 곳. 여기는 소를 위한 모든 나라, 우리는 풀처럼 순하게 앉아 있고 코뚜레를 꿰기도 전에 달아난 사랑 또한 어느 구석진 자리에서 꼬깃꼬깃 입을 봉한 봉투를 들고 사람을 줍고 있는, 언제나 막다른 곳이다. 인생이란 입으로 뱉기 전에 뒤를 들키는 말이어서 웃는다. 빌어먹을, 다음 생이 있다면 이번 생은 살지도 않았을 것! 소가 웃는다. 발밑에 떨어진 숨을 동전처럼 주워 다시 핥는다. 그게 다 영원이란 말 때문에 그래. 소..

한줄 詩 2022.07.26

그 흔한 연고도 없이 - 이명선

그 흔한 연고도 없이 - 이명선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나의 이야기로 나는 흥건한 바닥이 되었다 고시를 치를 생각 없이 고시원에 있었다 공직자처럼 공개할 재산이나 공제할 가족이 있었다면 고사했을 것이다 열대야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물수건을 올리고 느린 밤을 밝히듯 삶의 낱장을 뜯으며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 봤다면 엎드려 자다 목마른 얼굴로 일어났더라면 그래서 우리가 언뜻 마주칠 수만 있었다면 흥건한 바닥에 배설된 우리가 떠다닌다 말 한번 섞어 본 적 없는 누군가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듣는 우리의 이야기는 작은 소란에도 불시에 솟구치려는 간헐천 같았다 두 평 남짓한 방에서 우리의 회고록을 쓴다면 공수래공수거라고 써야 할까 공공의 적이라 써야 할까 검은 마스크로 가린 칸칸의 방은 타 버린 낱..

한줄 詩 2022.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