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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 - 박판식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 - 박판식 25 곱하기 2에 빼기 2, 어린 아들은 무엇을 계산하는가 검은 장미, 하늘은 후퇴를 거듭하는 중이다 운이 다한 거북이가 바다로 돌아가는 길에 굶주린 자칼을 만난다 스물다섯 나이에 죽은 엄마를 만나러 쉰여덟 나이의 아들이 하늘나라로 가면 아빠 같은 아들과 딸 같은 엄마가 만나겠네 장구벌레들이 눈송이처럼 떠 있는 웅덩이를 엄마 하고 불러본다 나가려고 옷을 차려입었다가 다시 하나씩 벗고 발가숭이가 되어 중환자실의 외삼촌 자세로 누워본다 임신한 아내가 냉면을 찾는다 뱃속의 아이는 실컷 놀았다 제아무리 더하고 빼도 세상의 무게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시집/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 문학동네 나는 말한다 - 박판식 인생은 발걸음이 빠르다, 화요일에는 엉터리 ..

한줄 詩 2022.07.28

은유로서의 질병 - 이현승

은유로서의 질병 - 이현승 다시 태어난다면 하고 생각해 본 적 있지만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후회가 없는 사람은 없고 우리는 모두 실패한 적이 있지만, 그래서 실패의 기원으로 가서 기원을 제거해야 하는 것은 터미네이터-T1000의 일이겠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유감스럽게도 액체 금속이나 최첨단 나노 갑주도 없이 기껏 두부처럼 무른 살가죽만 걸치고 태어나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빨거나 쥐는 것, 먹고 싸고 울고 웃는 게 전부일 뿐이며 더욱이 우리에겐 기억이 없을 것이므로 시간을 거슬러, 마땅히 되돌아온 이유를 모르는 우주 전사의 처지란 기실 우주 미아와 같을 것이다. 나는 전생을 믿지 않고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 철두철미한 현실주의자이지만 코끝 벌름거리게 하는..

한줄 詩 2022.07.27

반성 - 편무석

반성 - 편무석 가을은 나의 발치 처음 슬픔이란 지병을 얻은 것도 내가 태어난 가을 겁도 없이 덤비다 꺾이고 찍혀 능청스레 붙잡아 둔 삭정이를 온몸에 박힌 옹이를 엄살로 갈고닦은 그늘은 편리하고 따뜻한 병상 몸이 뜨거워 주체하지 못한 나무가 분신(焚身)에 들 때 너무 크게 벌린 나의 입은 가을의 아궁이 울컥울컥 넘치는 핏빛 재를 받는다 흰 눈이 자랄 때까지 제 살 찢어 우는, 하늘에서 내리는 검은 눈에 야위어 가는 흰 바람 *시집/나무의 귓속말이 떨어져 새들의 식사가 되었다/ 걷는사람 간월도 - 편무석 살아내지 못할 것 같던 날들이었지 고비마다 뛰어들던 달빛에 이별을 달려온 길은 기적이었어 건너를 향해 내민 손이 뒤틀린 나무는 오랜 시간 흔들려서야 물결의 상념을 키워 물결을 부르는 마음에 닻을 던진 서해..

한줄 詩 2022.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