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을 통과하는 소란 - 최규환
어둠끼리 살을 맞대고 온전한 무엇에 기댈 때
온기를 품은 매미 소리는
누구의 허물을 받아내는 목청일까
아무도 없고
어느 누구도 있으면 안 되는 새벽 정거장
실개천을 뒷목에 감춘 섬뜰교 너머엔
고요가 남긴 슬픈 뒤태로 서성이다가
오늘에서야 내 눈에 들어찬 풍경을 펼쳐 들었다
팔자에도 없는 몸이 뒤엉켜
목불좌상(木佛挫傷)의 염주를 꿰고 있던 매미는
우는 방향에 맞춰
허물이 깃든 내연의 짝을 이루고 있다
사랑에 실패한 울음이었다가
고비를 넘나드는 밤이 오고
한세상 떠메어 흐르다,
경계를 허물며 읊어대는 경전(經典)을 펼쳐놓은 것인데
슬픔도 한 밑천이라서
몸을 헹구는 적막으로 왔다가
다른 세상을 잇는 들끓는 소리로
죽음도 불사하고 빛나는
저,
바스러지는 소란
*시집/ 설명할 수 없는 문장들/ 문학의전당
슬픔의 역설 - 최규환
자기 증명이면서 흔한 방식의 부호였다
슬퍼할 때 솟아나는 마음의 돌기가 있다
눈물을 쏟고 난 뒤의 희열과
장례를 치르고 나서 허기가 오는 것처럼
슬픔 안에는 나를 채워 나가려는 욕망이 깃들어 있다
누군가를 불러보는 일
불을 피워놓고 불꽃이 이는 바람을 따라 눈을 던져주던 일
버려야만 가질 수 있는 것들도 있어서
아파야만 얻을 수 있는 치유도 있어서
지루하고 통속적인 고백이
수천 편의 시보다 훌륭한 건
안으로 밀어 넣어주려는 지독한 것들이 들어차 있어서다
미친 듯이 밤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내 안에 파고드는 소용돌이에 몸을 맡기는 게
허망을 채우는 가장 편한 방법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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