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막창집 - 김륭

마루안 2022. 7. 26. 21:27

 

 

막창집 - 김륭

 

 

영원, 이라는 말을 구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팔라진 숨들이 장례식장 화환처럼 묶인 곳, 내가 웃으면

바람이 따라 얼굴을 질겅거리며 들어설 것 같은,

 

여기서는 밤도 문상객이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자연도 아니고 과학도 아니어서

울음마저 질겨서 한 번 더 영원이 시작되는

곳.

 

여기는 소를 위한 모든 나라, 우리는 풀처럼 순하게 앉아 있고

코뚜레를 꿰기도 전에 달아난 사랑 또한

어느 구석진 자리에서 꼬깃꼬깃 입을 봉한 봉투를 들고

사람을 줍고 있는,

 

언제나 막다른 곳이다. 인생이란 입으로 뱉기 전에

뒤를 들키는 말이어서 웃는다. 빌어먹을, 다음 생이 있다면

이번 생은 살지도 않았을 것!

소가 웃는다.

 

발밑에 떨어진 숨을 동전처럼 주워 다시 핥는다. 그게 다

영원이란 말 때문에 그래. 소의 마지막 위를 꼭꼭

씹어 삼키던 어느 시인의 말을 불판 위에

가만히 올려놓은 나는

 

밤보다 더 어두워지면 좋겠는데, 전생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듯

비를 데리고 막창집 2층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

소를 보았다.

 

여기, 한 접시 더요!

 

우리는 영원이란 말을 다시

굽기 시작했다.

 

나는 소가 잘할 거라

믿는다.

 

 

*시집/ 나의 머랭 선생님/ 시인의 일요일

 

 

 

 

 

 

침대 - 김륭

 

 

도마 위에는 언제나 생선보다 먼저

칼이 누워 있다.

 

오셨군요.

이 세상도 저세상도 아닌, 아주 멀고 깊은 곳에서

 

눈을 감는 순간 도마가 일어선다. 걷기 시작한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꿈을 못 꾸는 이유와 아무도 내 곁에

없는 까닭을,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더 이상 이 세상에서 구할 수 없는 여자의 눈꺼풀이거나

반바지 같은 것이라고

 

두 눈을 부릅뜨고, 아주 잠깐을

두리번거리다 가만히 숨을 놓고 세상을 미끄러지듯 나는

누워 있다. 여기

 

흘러내리고 있다. 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있는 척, 죽은 척, 죽었으니까 마음대로 울어도 되고

날아다녀도 된다는 듯

 

마지막 문장은 쓰는 게 아니라 지워야 하는 것이라고

당신과 내가 살았던 세상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태어나기 전의 세상이라고 그 세상이

여기라고

 

어머니, 어쩌면 나는 당신의 몸을 빌린 게 아닐지 모르고

내가 나를 낳았을지 모르고

 

도마 위의 생선은 칼이 떠난 다음에야

떠날 수 있다고, 나는

누워 있다.

 

사랑들 먼저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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