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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은유가 나를 집어 삼킬 때 - 박순호 시집

박순호 시인이 새 시집을 냈다. 유명한 시인은 아니지만 꾸준히 시집을 내고 있는 사람이다. 시 쓰기의 길이 자신의 삶과 분리되지 않을 때만이 이렇게 꾸준히 시집을 낼 수 있으리라. 이 시인의 어느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에 이런 문구가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이 눈물이었고 상처였지만 쓰여진 시가 눈물과 상처를 치유했다고,, 맞다. 나는 이 문구에서 시에서 벗어나지 못할 이 시인의 운명을 본다. 나같은 독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목숨 걸고 시를 읽진 않지만 이런 시집을 만나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활자 중독의 운명이다. 어떤 시인이 그랬다. 시를 읽는 사람보다 시를 쓰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라고,, 어쨌든 시집 출판이 많은 것은 좋은 현상이다. 쏟아져 나오는 시집 중에 이렇게 인연이 닿는 시집을 만날 수 있으..

네줄 冊 2021.05.30

서성이다 - 박형욱

서성이다 - 박형욱 산중 고찰 경내에 머무는 나무는 고목이 되고 산비탈 계곡 따라 떠나는 물은 바다에 닿는다 한자리에 오래 머문다는 것과 쉼 없이 멀리 흐른다는 것은 모두 지극한 합장 언제던가 죽을 만큼 치열해본 적이 생의 절반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해 절집 마당 서성이는 그림자가 있다 *시집/ 이름을 달고 사는 것들의 슬픔/ 도서출판 지혜 남은 이력(履歷) - 박형욱 벽시계가 어느 날 멈췄다 건전지를 갈아 끼우면서 인간 수명도 건전지 같다는 생각에 살아온 이력을 더듬어 본다 십대에는 축구만 했다 이십대에는 이데올로기 과식에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다 나머지 이십 년은 산 속을 네 발로 기어다녔다 복기해볼수록 심장을 때리는 맥박 시계불알처럼 살기 위하여 가불까지 했다니 어디쯤 달렸는지 모르고 사는 건전지 위치..

한줄 詩 2021.05.30

다음 생까지는 멀고 - 김윤배

다음 생까지는 멀고 - 김윤배 왜 흰 회벽으로 된 방에 유폐되어 있는지 천천히 하얀 회벽을 둘러보거나 낡은 서간집의 표지를 들여다보거나 부장품, 레벡의 네 현을 튕겨보거나 Time to say goodbye를 허밍으로 노래하거나 여러 개의 촛불을 창틀에 올려놓거나 실루엣이 하얀 회벽에 유령처럼 일렁인다 젖은 눈을 감았다 뜨면 밤이고 다시 감았다 뜨면 낮이다 밤과 낮이 눈동자 안에 있다 창틀의 촛불이 꺼지기 시작한다 황홀한 착란의 시절은 스치듯 지나갔다 유폐는 선택이었다, 밤은 며칠씩 계속되었으니 잠시 행복했고, 늘 얼어 있는 입술로 불행했다 얼어 있는 입술을 이 생에서 녹일 수 없다 다음 생까지는 멀고 *시집/ 언약, 아름다웠다/ 현대시학사 청춘 - 김윤배 숲속의 야생화는 아직 지려고 하지 않았는데 마음..

한줄 詩 2021.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