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이다 - 박형욱
산중 고찰 경내에
머무는 나무는 고목이 되고
산비탈 계곡 따라
떠나는 물은 바다에 닿는다
한자리에 오래 머문다는 것과
쉼 없이 멀리 흐른다는 것은
모두 지극한 합장
언제던가
죽을 만큼 치열해본 적이
생의 절반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해
절집 마당 서성이는
그림자가 있다
*시집/ 이름을 달고 사는 것들의 슬픔/ 도서출판 지혜
남은 이력(履歷) - 박형욱
벽시계가 어느 날 멈췄다
건전지를 갈아 끼우면서
인간 수명도 건전지 같다는 생각에
살아온 이력을 더듬어 본다
십대에는 축구만 했다
이십대에는 이데올로기 과식에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다
나머지 이십 년은 산 속을
네 발로 기어다녔다
복기해볼수록
심장을 때리는 맥박
시계불알처럼 살기 위하여
가불까지 했다니
어디쯤 달렸는지
모르고 사는
건전지 위치
가늠 된다
휴~ 아직 뛴다!
# 박형욱 시인은 충북 충주 출생으로 <이름을 달고 사는 것들의 슬픔>이 첫 시집이다. 2000년에 귀농하여 밤나무 농장을 운영하며 시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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