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북한산, 원효봉-백운대-승가봉-족두리봉

원효봉을 거쳐 백운대에 올랐다. 이 길은 정상으로 가는 길 중에 비교적 한산한 코스라 자주 이용한다. 일상에서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데 산에서까지 앞사람 엉덩이만 보며 걷는 것처럼 무료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런 산행이라면 차라리 운동기구가 갖춰진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 것이 낫다. 어느 건물 벽에 있는 원효봉 안내 글자다. 얼마전까지 연두색 새순이 돋았었는데 어느새 푸른 담쟁이 덩굴이 무성하다. 둘레길과 등산길이 나뉘는 곳이다. 원효봉은 오른쪽으로 가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서암문이다. 죽은 사람을 내보내는 문이라 해서 시구문이라고도 한다. 원효암이다. 작고 아담한 가정집 같은 암자다. 북한산의 절들이 대중과 단절된 절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예외다. 이렇게 열린 절일수록 탐방객은 있는 듯 없는 듯 바람결처럼 흔..

일곱 步 2021.06.05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 양창모

읽으면 저절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왕진의사 양창모 선생이 쓴 에세이다. 환자가 병원을 찾는 것이 일반적인데 의사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 진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담담한 필체로 서술하고 있다. 몸이 불편해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도 있고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첩첩산중에 사는 환자도 있다. 그런 환자를 위해 양창모 선생은 직접 방문해 진료를 하고 처방을 내린다. 환자와 가슴으로 소통하는 따뜻한 의사라는 생각이다. 왜 그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환자가 방문하는데 이렇게 왕진을 가는 것일까. 대단한 소명 의식 때문이 아니라 가능하면 약자와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10년 이상 동네 의사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와 함께 하고 있다.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책에..

네줄 冊 2021.06.05

지독히 다행한 - 천양희 시집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게 책이 없었다면 인생이 얼마나 삭막했을까. 분명 그랬을 것이다. 특히 시집이 그렇다. 영국에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시를 읽으며 달랬다. 당시 한 직원 때문에 한동안 불면증이 올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잠을 못 자 몽롱한 정신에도 시를 읽으면 마음이 진정 되었다. 천양희 시집이 그랬다. 한국에 왔다 돌아갈 때마다 몇 권의 시집을 꼭 챙겼다. 일단 오래 읽을 수 있어서 시집이 좋았다. 그 속에 천양희 시집이 있었다. 2017년, 15년 만에 돌아와서 그동안 밀렸던 시집을 찾아 읽었다.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은 없는데 읽고 싶었던 시집은 많았다. 시에 대한 갈증이랄까. 천양희 시집을 찬찬히 다시 읽는 계기가 되었다. 물도 급히 먹으면 체하듯 시도 급히 읽으면 사레가 들 수..

네줄 冊 2021.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