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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道伴) - 이상국

도반(道伴) - 이상국 비는 오다 그치고 가을이 나그네처럼 지나간다. ​ 나도 한때는 시냇물처럼 바빴으나 누구에게서 문자 한 통 없는 날 조금은 세상에게 삐친 나를 데리고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준다. ​ 양파 접시 옆에 춘장을 앉혀놓고 저나 나나 이만한 게 어디냐고 무덤덤하게 마주 앉는다. ​ 그리운 것들은 멀리 있고 밥보다는 다른 것에 끌리는 날 ​ 그래도 나에게는 내가 있어 동네 중국집에 데리고 가 짜장면을 시켜준다. *시집/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창비 누이 생각 - 이상국 -동요 에 기대어 누이라는 말 그립다 무정한 나의 어머니는 아들 삼형제만 낳아서 오빠라는 말 한번 듣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지만 뜸북새 울면 눈이 퉁퉁 부어 서울 간 오빠 기다리던 누이들은 다 어디 갔나. 없는 집..

한줄 詩 2021.05.28

새가 날아간 후 - 박주하

새가 날아간 후 - 박주하 저 나무 겨드랑이에서 다투며 피었던 꽃들 모두 날아간 뒤 나무는 혼자 무슨 생각을 하나 어깨가 휘도록 무성했던 잎 지고 난 뒤 이리로 오라던 간절한 손짓 내려놓고 나무는 날마다 무슨 생각을 하나 재잘거리던 씨앗들 박수를 치며 웃던 잎사귀들 다 떠나보낸 뒤 비우고 비운 마음속에는 또 무엇이 들어오나 말하지 않아도 굳은 다짐이 있었나 아무도 모르게 번진 약속들이 있었나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오르자 누군가는 지구의 끝이라 말하고 가지 끝에 앉았다 날아오르는 새는 그것을 시작이라 말한다 *시집/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걷는사람 오월의 사람에게 - 박주하 -노무현 못다 한 말 품고 한 번만 다녀가세요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꼭 한 번만 다녀가세요 할 말이 많아서 오는..

한줄 詩 2021.05.28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 손병걸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 손병걸 고운 꽃잎에 베인 허공이 파르르 떨고 있는 모습을 한참 동안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날부터 나는 걸음을 가만가만 내디뎠고 키가 큰 나뭇가지에 찔린 먹구름 속에서 소리 없이 내리는 빗물 한 방울도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그만큼 길 위에서 자주 젖었고 굵고 긴 빗줄기가 멈춘 뒤에도 한여름 뙤약볕 속을 길게 걸었다 언젠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은 그늘 숲속 나무 밑동 아래에서 바싹 마른 풀잎 한 가닥이 차지했을 허공이 또다시 풀잎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동안에도 나는 주저 없이 되돌아 걸어야 했다 넓어진 보폭만큼 내 몸이 빠르게 자라며 음파음파 패인 허공의 신음이 바람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될 때쯤 나는 겨우 둥글게 잠들기 시작했다 스스로 몸을 말며 작아지는 것들은 허공의 ..

한줄 詩 2021.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