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무덤 - 천수호 우리집 이불 속 역사는 약사(略史)로만 전해진다 저 속에서 얼마나 자주 아이를 잉태했는지도 저걸 덮고 큰언니가 죽어나간 일도 어디에도 기록은 없다 간단한 엄마의 말로 요약되어 가끔 끙, 하는 신음에만 묻어나올 뿐 완전한 진실은 다 묻혔다 어린 내 발등에 차인 아버지 밥그릇이 두어 번 발라당 넘어졌어도 아버지는 묵묵히 머리카락을 떼고 밥그릇을 다 비우셨고 스테인리스 밥그릇의 절절 끓는 온기가 내 발끝을 자주 녹였다는 것도 묵인된 역사였다 누구 발등인지 모를 매끈한 살결에 은근히 발을 잇대기도 했고 그 촉감만큼 매끄러운 눈물도 이불 속에서는 잘 묻혔다 부화된 아이들은 무럭무럭 그 이불 속에서 자랐고 이불 속으로 도저히 두 발을 숨길 수 없을 때는 하나씩 집을 떠나갔다 하얀 목화솜이 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