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미지의 나날 - 윤석정

미지의 나날 - 윤석정 나이를 들어도 비슷비슷한 나날들의 미묘한 차이를 몰라 나는 차이에서 막막하고 나날에서 막연하다 나날들의 이름에 얼굴이 있을 텐데 내가 알 수 없는 얼굴들은 어둡다 휴대 전화의 이름을 들여다보다가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도 동명이인의 얼굴들이 마구 겹쳐도 혹여 그가 최초의 내 얼굴을 이미 삭제했더라도 나는 알 수 없는 얼굴들의 이름을 지울 수 없다 그의 이름은 미지이므로 때때로 해묵은 일기장 속의 얼굴들이 영영 다다를 수 없는 미지의 저편처럼 점점이 어두워지고 내가 관통했던 시공의 얼굴들은 검정으로 변했으므로 하여 내게 미지의 나날은 검정 미지의 이름은 최초의 어둠 영혼은 투명 나의 얼굴에 영혼이 담겨 나의 이름도 투명이어야 될 텐데 나이가 들수록 최초의 얼굴들은 밥 먹듯 나날을 ..

한줄 詩 2021.05.29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 천양희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 천양희 마음 끝이 벼랑이거나 하루가 지루할 때마다 바람이라도 한바탕 쏟아지기를 바랄 때가 있다 자기만의 지붕을 갖고 싶어서 우산을 만들었다는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후박잎을 우산처럼 쓰고 비바람 속을 걸어가던 네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별명이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랭보를 생각할 때마다 바람은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서로 부르며 손짓하는 것이라던 절절한 구절을 옮겨 적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라고 다른 얼굴을 할 때마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던 죽은 시인의 시를 중얼거릴 때가 있다 여러 번 내가 나를 얻지 못해 바람을 맞을 때마다 바람 속에 얼굴을 묻고 오래 일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이 세상 어디에 꽃처럼 피우는 바람이 있다면 바람에도 방향이 있고 그 속..

한줄 詩 2021.05.29

우리 자연사 하자 - 미미 시스터즈

살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가슴 뛰는 일이 꽤 많아 살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나 같은 이상한 애도 만나지 5분 뒤에 누굴 만날지 5년 뒤에 뭐가 일어날지 걱정하지 마 기대하지 마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야 걱정 마 어차피 잘 안 될 거야 우리 자연사 하자 우리 자연사 하자 혼자 먼저 가지 마 우리 자연사 하자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우리 자연사 하자 너무 열심히 일하지는 마 일단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너무 말 잘 듣는 아이가 되지마 일단 내가 살고 볼 일이야 힘들 땐 힘들다 무서울 땐 무서워 말해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좋은 일이 생겼다고 마냥 다 가졌다 생각하지 마 나쁜 일이 생겼다고 마냥 이불 속에서 우울해하지 마 아플 땐 의사보다 퇴사 우리 자연사 하자 혼자 먼저 가지 마 우리 자연사 하자 # 매주 금요..

두줄 音 2021.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