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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 대한 기억 - 최준

우물에 대한 기억 - 최준 계산속으로는 하루에 하루를 더하면 이틀이 맞다 맞지만 두레박에서 부엌까지 여름에서 다시 여름까지 하늘을 이고 물동이가 오간 거리는 별들이나 읽을 수 있던 시간 할머니 적 얘기다 우물 안 개구리가 구름 위로 팔짝 뛰어오르기도 하고 버드나무 화살촉 하나가 그 어두운 구멍을 향해 잘못 쏘아지기도 하고 넘칠 일 없는 함박눈이 둥근 적요를 메워보려고 무리하게 겨울을 온통 겨울로 안간힘 쓸 때도 무릎 한 번 출렁이지 않고 그냥 버텼을 거다 할머니 돌아가신 지 삼십 년 뒤란 장독대를 반짝여주던 북극성을 묻어버리고 버드나무 밑동을 잘라 마지막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저녁 남몰래 지워진 길이 하나 있었을 거다 아무도 만져주지 않았던 시간이 저 홀로 먼 길을 가고 있었을 거다 눈물 흘러넘치면서 먼..

한줄 詩 2021.05.27

물의 저녁 - 손남숙

물의 저녁 - 손남숙 물결이 나무의 한 생애를 주름으로 집적하여 기화된다 올라와 한때 푸르렀던 시간 기억은 가지를 들고 사라지는 한 잎 늦가을 스산한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잎들의 커다란 환전 깊은 고요와 심해의 물고기와 같은 호흡이 굽이쳐 어쩌면 잎잎이 저렇게 버적거리나 생애의 달콤한 먼지는 늘어질 수밖에 없지, 쌓이므로 연거푸 날아가는 새들이 부르짖는 세계 아른거리는 노래의 후렴구는 만삭의 흩날림과도 같고 그 모든 것들을 붉게 연주하는 계절을 잊었네 해마다 되비쳐 오는 상처를 물에 앉히면 슬금슬금 돋아 나오는 물의 무늬 어스름 저녁의 과오와 같은 물결 *시집/ 새는 왜 내 입안에 집을 짓는 걸까/ 걷는사람 찰칵 - 손남숙 세 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까지 세 시간이나 내가 안 것은 ..

한줄 詩 2021.05.27

마지막 항구에서 - 이형권

마지막 항구에서 - 이형권 어제는 항구에 가서 그대를 보았다 머지않은 눈보라의 예보가 그물처럼 내리고 저마다의 가난과 행복을 한 두릅씩 흥정하는 인파 속에서 흰 파도처럼 웃어 대는 그대를 보았다 불현듯 그대가 그리운 날이면 나그네처럼 항구를 헤맨다 먼 바다의 추억으로 몸을 흔드는 깃발들 회선의 싸이렌이 울고 무인등대 사무친 외침 속에서 바다의 꿈을 홀로 적시는 그대의 노랫소리 나는 그대를 향해 나그네의 길을 준비하리라 땅거미를 밟고 초병들이 들어서기 전 집어등 같은 희망을 달고 떠나가리라 흉어기의 뱃전에 그물코를 건져 올리며 그대의 겨울을 향해 떠나가리라 *시집/ 칠산바다/ 문학들 등대 - 이형권 쓸쓸하구나 내 마음은 언제나 해 지는 등대 밑을 떠돌았으니 그대 먼 곳으로 떠나갔을지라도 옛 생각에 슬며시 ..

한줄 詩 2021.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