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에서 - 이형권 겨우내 바다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거친 파도가 밀려드는 수평선 너머 저 혼자 장판지 같은 하루를 접었다 펼쳤다 바다는 속절없는 날들이 얼마나 쓸쓸하였을까요 바람 부는 모퉁이 벼랑길을 돌아서면 한겨울 매서운 해풍 속에서 앓던 열병을 동백꽃은 알고 있지요 그래서 잎새마다 선연하게 피꽃을 피워낸 것이지요 거역할 수 없는 운명만이 오직 붉은 가슴으로 피어나 겨울 바다의 쓸쓸함을 연모했을 뿐 지난 세월을 말해 무엇하리오 남풍이 지나가는 길목에는 명주실 같은 봄빛이 반짝이고 어느덧 사랑과 이별의 경계에 이르렀습니다 세상의 길들이 저녁노을처럼 아득해지고 보이지 않던 추억들이 뚜렷해지는 시간 홀로 그대의 열망을 사랑했던 날들만이 남았습니다 손 내밀어도 닿지 않을 변방의 극지에서 찬란한 애모 빛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