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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시린 계절 - 백애송

발이 시린 계절 - 백애송 말을 거는 명함 앞에 선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게시판 앞에 우두커니, 지나가는 버스에 손을 흔들고 어젯밤 지나친 나무의 손을 잡는다 흘러가지 않는 구름 아래를 서성인다 음소거 된 TV 앞 엿보는 그들의 세상은 은밀하고 패륜인지 불륜인지 알 수 없는 거리두기에는 슬픔이 빠져 있다 나의 이름인지도 모를 글자 앞에서 덧셈과 뺄셈을 한다 농담과 진담의 수위에 대해 아무에게도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거는 사람들 발이 시린 계절은 누구에게나 왔지만 누구나 허락하지 않았다 *시집/ 우리는 어쩌다 어딘가에서 마주치더라도/ 걷는사람 불혹의 문장 - 백애송 손톱으로 저며지지 않는 노란 결을 따라 칼날을 꽂는다 점점 커지는 시간으로부터 멀어진 너는 보이지 않는 단단한 결을 세우고 있다 세상 한 ..

한줄 詩 2021.08.03

불가항력 - 고태관

불가항력 - 고태관 깔깔깔 웃다가 잊을 거짓말 허튼소리를 궁리하면서 하루를 다 보낸다 거짓말에 실패한 만우절 나머지 364일 동안 진심을 그르친다 1월1일 카운트다운이 지나고 드는 생각 사람다운 것에서 점점 멀어지는 거라면 말라 버린 출생신고 잉크가 희미해지고 있다면 그게 늙는 거라면 서글프겠다 어른이 되다니 어른이 되고 나서 그다음은 뭐가 되지 다음 단계의 변신이 남지 않은 로봇처럼 어쩔 줄 모르겠다 쓸쓸하겠다 새로 핀 벚꽃보다 바다가 보고 싶은 날이 많았다 활짝 핀 꽃다발을 안고 해변을 달렸지만 막상 파도를 보면 심드렁하고 늘 떠나고 없는 사람이 보고 싶다 나는 모래성으로 허물어지고 있어서 어쩔 수 없겠다 *시집/ 네가 빌었던 소원이 나였으면/ 걷는사람 보문 - 고태관 -죽어서도 나는 갈 데가 없어요..

한줄 詩 2021.08.02

그 말이 나를 삼켰다 - 천양희

그 말이 나를 삼켰다 - 천양희 아름다움이 적을 이긴다고 하기에 미소 짓는 이 꽃이 내일이면 진다는 걸 믿지 않았다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아야 한다기에 한낮의 볕이 그늘 한뼘 들여놓는 걸 잊지 않았다 불은 태울 수 없고 물은 물에 빠질 수 없다기에 사람이라도 좀 되어보자고 결심했다 끝없는 풍경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기에 세상에 드러나 부끄럽지 않은 것이 꽃밖에 더 있을까 생각했다 삶에는 이론이 없다기에 우리가 바로 세상이란 걸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변했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기에 붓 쥔 자는 외로워 굳센 법이란 걸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갈피를 잡는 동안 그 말이 나를 삼켰다 *시집/ 지독히 다행한/ 창비 푸른 노역(勞役) - 천양희 바람은 잘 날이 없어 어쩌면 목 놓은 소리로 헤메는..

한줄 詩 2021.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