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 - 윤의섭 시집

윤의섭 시인이 소문도 없이 시집을 냈다. 서점에 갈 때마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는 것처럼 시집 코너를 들른다. 요즘은 보통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전이 그런 날인데 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을 부리며 출판 동향을 탐색할 수 있어서 좋다. 언제나 나의 관심은 메이저 출판사보다 무명 출판사 시집이 먼저다. 그런 시집일수록 눈에 띄는 곳이 아닌 모퉁이 아니면 맨 아래 칸이다. 여행에서도 걸어야만 보이는 풍경이 있듯이 시집 코너에서도 쭈그리고 앉아야 보이는 시집이 있다. 어라, 이 시인이 시집을 냈네? 이 시인도 비교적 시집 내는 주기가 4년 정도로 규칙적이었는데 이번 시집은 조금 주기가 당겨졌다. 단순한 디자인의 소박한 표지가 마음에 든다. 사람도 반가우면 손부터 잡듯이 나는 반가운 시집을 만나면 표지를 쓰다듬는..

네줄 冊 2021.07.26

사랑이란 - 김익진

사랑이란 - 김익진 사랑은 탐험될 수 없는 은하 별들 속에 반짝이는 별 빈 공간에 가득한 어둠처럼 보이지 않으나 실재한다 우주의 무한한 팽창처럼 영혼은 원자의 불확실성 사랑은 어쩌면 일시적인 융합 후 긴 분해의 표류다 사랑의 본질은 알 수 없는 심연 영혼을 찾아가는 길 위에는 언제나 눈비가 내리고 녹는데 내 것이 아닌 것을 잃어버린 후 힘들어하면 사랑이라 한다 자유로웠던 마음이 과거에 잡혀 있고 안개 속 헤드라이트를 보고 고양이처럼 두리번거리면 사랑이라 한다 눈물 가득한 눈으로 새벽을 바라보면 누군가 사랑이라 의심하고 살아있음으로 충분한데 무중력의 영혼을 잡으려 하면 그것은 분명 사랑이다 사랑은 반드시 담론의 대상이 있고 구체적이다 그리하여 사랑이란 정교하지만 보이지 않는 소비의 밤 방문을 걸어 잠그고 ..

한줄 詩 2021.07.22

얼굴을 쉬다 - 김나영

얼굴을 쉬다 - 김나영 한 사흘 집 안에 틀어박혀 있으니 얼굴에서 해방된다 내 얼굴이 내 얼굴이 된다 타인의 시선이 각질처럼 떨어져 나간다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얼굴은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닌 것이 된다 보이고 싶은 나와 보이지 나는 한 번도 일치하지 않는다 얼굴은 붉고 물컹한 낭떠러지 근엄한 표정 무서운 표정 다정한 표정을 장소에 따라 화장과 분장으로 덧칠하며 무기처럼 사용한다 이틀 만에 세수를 했다 해골과 가죽과 살만 오롯이 잡히는 내 얼굴을 오랫동안 씻고 또 씻었다 혹시라도 남아 있는 타인의 시선을 내 얼굴로 함부로 횡단하던 타인의 흔적을 씻고 또 씻어 냈다 나는 곧 외출을 할 것이다 독자의 손으로 넘어간 내 작품처럼 내 얼굴은 곧 금이 가고 해체되고 해석되어 왜곡될 것이다 나는 또 얼굴을 팔러..

한줄 詩 2021.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