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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록 거울 속의 비둘기 - 주창윤

볼록 거울 속의 비둘기 - 주창윤 상징이란너무 자주 닦으면 녹스는 것이 아닌가 시청 광장과 덕수궁 사이를 마을버스처럼, 오가는 한 떼의 비둘기들 뜬금없는 비상 덕수궁 내 볼록 거울 앞에 섰을 때 빈 병 같은 나 터무니없이 부풀어 오른 똥배와 바람 빠진 뇌 볼록 거울 앞의 나와 비둘기의 공전(空轉)에는 차이가 없다. 자주 닦아 텅 빈 상징 속에서 한 번도 투쟁적으로 날아본 적이 없는 비둘기 떼가 광장 위를 선회한다. 위엄 있게, 아주 평화롭게, 코미디처럼. *시집/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 한국문연 사우나 성지순례 - 주창윤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나고 이슬람교인들은 메카로 향하는 길목에서 돌기둥에 돌을 던지며 마귀를 쫓고 힌두교인들은 갠지스강에서 환생의 하늘 물고기를 잡는다. 기독교 대..

한줄 詩 2021.08.23

부패한다는 것 - 박순호

부패한다는 것 - 박순호 간혹 공기에는 억울한 정령이 섞여들어 칼과 함께 흘러 다닐 때가 있다 촉수가 달린 칼은 누군가의 죽음이 전달되는 순간 급류에 휘말리는 배처럼 빠르게 다가와 집도한다 죽음이 다른 죽음을 보지 못하도록 죽음으로부터 죽음이 발뺌하지 못하도록 눈알부터 노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침착하게 진행된다 먼지 한 톨 일으키지 않고 정해진 시간 안에 오직, 하나의 정신과 집중력으로 그림자까지 한 칸씩 발골(拔骨)한다 풀숲에 개 한 마리 엎드려 있다 미동조차 없는 개 옆으로 풀줄기가 흔들리고 금파리 떼가 윙윙거린다 결국 생의 무게는 엎드린 채 살과 장기와 가죽 순서대로 순번을 어기지 않고 차례로 풀어지면서 바닥이 된다 부패는 한쪽으로 치우친 무게를 덜어낸다 죽음 이후의 대답은 소스라칠 만큼 간단명료하다..

한줄 詩 2021.08.23

축소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 이보람

흥미롭게 쭉쭉 읽어내려간 책이다. 한 10여 년 전부터이던가. 이런 류의 책을 좋아 한다. 마음만 먹고 실천하지 못하던 미니멀리즘을 실행하면서부터 유독 환경에 관한 책을 찾아 읽게 된다. 매사에 주먹구구식이면서 책 읽기는 비교적 계획적이다. 축소주의자란 말이 명징한 단어이지만 막상 일상에서 써먹으려고 하면 막막할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게 축소주의자구나 했다. 읽으면서 배우고 읽고 나서 실천하고 싶어지는 좋은 책이다. 작년 말인가. 올초였던가? 읽고 싶다는 생각에 메모를 해 눴으나 읽을 기회가 없었다. 꼼꼼하게 골라 목록에 올렸어도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기회가 오지 않거나 영영 잊혀지는 책이 많았다. 무슨 내용의 책인 줄 알고나면 무턱대고 읽기에 앞서 저자가 궁금하다. 이보람, 이름만 보면 ..

네줄 冊 2021.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