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도장 - 김가령 오래전부터 발소리가 띄엄띄엄 흘러왔다 한때 그도 기계식 앞에서 잠시 흔들렸다 수전(手顫)의 순간이 올 때까지 손을 고집했다 그를 끝까지 지켜본 건 가게 앞 은행나무였다 나무의 굵은 생이 안에서 바깥으로 빠져나와 그의 옆자리가 되곤 했다 도장 속 이름들은 전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손끝에 만져지는 서체는 이름을 뚫고 들어가 뼈가 된 것만 같은데 명부만 남기고 그들은 떠나고 없다 아직도 그는 이름 바깥으로 나무 그림자를 새겨 넣는다 도장을 가만히 쓸어보면 누군가 풍경 속을 서성이다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다 일면식도 없는데 웅성거리는 호명과 오래된 시간들이 손 안에 있다 막도장을 끝까지 손도장이라 부르는 이유, 이젠 알겠다 *시집/ 너에게 붙여준 꽃말은 미혹이었다/ 문학의전당 조등 - 김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