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746

남매의 여름밤 - 윤단비

잔잔하면서 울림이 있는 영화를 봤다. 코로나 시대에 모든 일상이 엉망이 되고 일부 업계는 쑥대밭이 되었다. 영화판도 코로나로 초토화가 된 분야다. 영화 개봉도 문제지만 영화 만드는 일도 많은 제약을 받는다. 코로나 이전에 찍은 작품이지만 이런 영화로 황폐해진 마음을 정화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저예산 영화이면서 이렇게 묵직한 울림을 주는 작품 만나기 쉽지 않다. 이혼하고 두 자녀를 키우는 남자가 있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지 집을 방문한다. 팔순의 아버지는 홀로 시골 집을 지키고 있다. 반지하 방에서 사는 아들에 비해 아버지 집은 2층 단독 주택이다. 할아버지와 만남이 어색했던 아이들은 넓은 집에 금방 적응을 한다. 그동안 아들은 아버지가 틈틈히 도와주었지만 그때마다 사업에 실패해 말아..

세줄 映 2021.08.18

여름성경학교 - 박민혁

여름성경학교 - 박민혁 부직포로 만든 예수의 가면을 쓰고, 어린이들을 보듬어 준다. 그중 한 아이가 내 귀에 속삭이길, 하나님인 척 마세요. 무얼 잘했는지도 몰고 일단은 참 잘했어요. 그래 사실, 모방할 것이 없으면 불안했던 것. 너와 나는 서로를 흉내 내는 거울에 불과했나? 결국 우리, 끝까지 이길 수 없는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는 것. 너는 언제까지 침묵하고만 있을 셈인지. 너라고 불러서 화가 난 거니? 짓궂은 불행이, 내가 쥔 성스러운 마리오네트의 끈을 툭툭 끊고, 달아나는 것을 본다. 십자가에 걸어 놓은 내 밀랍 인형을 떼 낸 뒤 나도 모르게 그만 두 손을 모으고, 신이여 다만..... 인간의 가호가 있기를. 나는 조금 지쳤다. 아니 조금 삐쳤다. *시집/ 대자연과 세계적인 슬픔/ 파란출판 여름성경..

한줄 詩 2021.08.18

별이 빛나는 낮에 - 손음

별이 빛나는 낮에 - 손음 이제 더 이상 살 수 없겠구나 말하면 희망이 화를 내겠지 이제 겨우 살 수 있겠구나 말하면 절망이 화를 내겠지 햇볕이 앙상하게 부는 날 검정 우산을 쓰고 나는 해변으로 갔지 대낮에도 반짝반짝 밤하늘이 펼쳐져 있는 곳이지 대낮에도 불을 켠 기차가 미친 듯이 지나가는 곳이지 나는 매일 우산을 쓰고 해변으로 갔지 아무라도 날 알아볼 수 있도록 비를 쓰고 구름을 쓰고 누명을 쓰고 파도가 최선을 다해 밀어 올린 해변의 것들 피붙이같이 엉켜 있네 나도 그 곁에 쪼그리고 살면 안 되나 슬픈 일은 혼자 앓아야 하는데도 모래와 파도와 죽은 갈매기에게 두근두근 내 얘기를 털어놓기에도 하루가 짧았지 내일도 해변으로 갔지 모레도 해변으로 갔지 영원히 갔지 나는 날마다 그곳에서 무엇이든 쓰고 썼지 누..

한줄 詩 2021.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