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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 진행 경위서 - 이송우

흰머리 진행 경위서 - 이송우 한 놈을 뽑으면 여럿이 솟았다 엄마의 머릿속 새치는 솎아내도 늘기만 하였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이 좋아 더 열심히 책을 읽었지만 도대체 그는 언제쯤 엄마 새치를 뽑아 줄 것인가 내 어린 무릎에 놓인 엄마 머리는 무거웠다 심통이 날 때면 나는 여럿을 잡아 뽑았다 아버지 없는 나, 엉터리로 뽑은 새치 때문에 백발이 된 울 엄마 사랑하는 박인순 선생님 그대여 내 새치를 뽑지 마시게 이것이 단 한 올도 건드리지 않은 내 흰머리, 더딘 진행 경위서 *시집/ 나는 노란 꽃들을 모릅니다/ 실천문학사 수면 장애 - 이송우 비 그친 오후 청파동 길바닥 돌맹이처럼 굴러다니는 사람들 저 감은 눈과 벌린 입속에서 나는 잠을 잔다 키우던 개를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때려잡던 복날 어른들처럼 순해진 ..

한줄 詩 2021.09.08

흘러간 그 노래 - 차영호

흘러간 그 노래 - 차영호 너는 그리움 분무기 저무는 하늘에 이내를 갈아 곱게 뿌리고 저 멀리 산그늘 밑으로는 잔별가루를 솔솔 어린 내가 장고개 외딴집 사랑에 살 때 모기장 속에 뿜겨오던 촘촘한 저녁의 입자와 같이 푸른 땀내 날리며 소행성 틈새 비집고 카이퍼 벨트를 내닫고 있는 말발굽들 그리움은 먼저 길 떠난 별들의 갈기 고요한 베어링 속에 살면서 베어링보다 바삐 나부대는 쇠구슬 늘 내 입안을 맴돌면서도 나랑 공범이기를 부정하며 흘러만 가는 그대여 그 곡조 웅얼거리기는 가없는 우주에 좌르륵좌르륵 무궁동(無窮動)의 쇠구슬 쏟기 *시집/ 목성에서 말타기/ 도서출판 움 착화탄(着火炭) - 차영호 나는 밑천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잘 판을 벌리곤 하지 사랑 연료가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보지 않고 덥석 미끼를 물고 ..

한줄 詩 2021.09.08

말씀과 삶 -박민혁

말씀과 삶 -박민혁 요구하지 않은 기도는 하지 말아줄래요. 나의 믿음은 도식적이어서요. 많은 이웃을 사랑했어요. 양쪽 뺨 정도는 마음껏 내줄 수 있지요. 성애도 사랑이니까요. 퍼즐을 꼭 맞춰야 하나요? 예쁜 슬픔 한 조각이 갖고 싶을 뿐이에요. 일생을 학예회처럼 살고 싶지는 않네요. 어린이를 연기하는 어린이는 끔찍하죠. 칠 흙 같은 밤에는 차라리 하늘을 보고 걷듯, 내 기도는 지속되지만 아멘을 발음할 땐 신중해야 합니다. 반복되는 절망은 내 탓이 아니죠. 비극은 생의 못된 버릇 같은 거니까. 강대상 뒤에는 당신 몸에 꼭 맞는 침대 걸려 있는데 아버지, 외박이 잦네요. 남을 미워하는 건 이젠 관두기로 했어요. 내 온실 속에는 꽃 피우는 고통만 들이기로. 통증 없는 삶은 결코 범사가 아닙니다. 당신 같은 플..

한줄 詩 2021.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