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흘러간 그 노래 - 차영호

마루안 2021. 9. 8. 22:23

 

 

흘러간 그 노래 - 차영호

 

 

너는 그리움 분무기

저무는 하늘에 이내를 갈아 곱게 뿌리고

저 멀리 산그늘 밑으로는 잔별가루를

솔솔

 

어린 내가 장고개 외딴집 사랑에 살 때

모기장 속에 뿜겨오던

촘촘한 저녁의 입자와 같이

 

푸른 땀내 날리며

소행성 틈새 비집고

카이퍼 벨트를 내닫고 있는 말발굽들

 

그리움은 먼저 길 떠난 별들의 갈기

고요한 베어링 속에 살면서

베어링보다 바삐 나부대는 쇠구슬

 

늘 내 입안을 맴돌면서도

나랑 공범이기를 부정하며 흘러만 가는

그대여

 

그 곡조 웅얼거리기는

가없는 우주에 좌르륵좌르륵

무궁동(無窮動)의 쇠구슬 쏟기

 

 

*시집/ 목성에서 말타기/ 도서출판 움

 

 

 

 

 

 

착화탄(着火炭) - 차영호

 

 

나는 밑천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잘 판을 벌리곤 하지

 

사랑 연료가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보지 않고

덥석 미끼를 물고 흔들기도 하고

 

아픔 재고를 들춰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가슴팍 두드린 적도 있어

 

요즘은 비애(悲哀) 잔량을 헤아려보지도 않은 채

무턱대고 눈물 먼저 흘리기까지 하네

 

잔고를 파악할 치부책이 없을 뿐더러

너를 기다려야 하는 달뜬 구름을 자질할 줄자조차

나는 지닌 적 없는데

 

빈자리 둘러보지 않아도

악머구리 떼처럼 엄습하는 그리움

 

공원묘지에 줄지어선 납골함 문패같이

눈부시게 나를 투시하는

길고 긴 행렬이라니

 

 

 

 

*시인의 말

 

밤 하늘을 들여다봅니다

어둠조차 오염된 어둠.....

어여 시궁에 빠진 별들을 건져야겠습니다

눈물로 헹구어 제자리에 조롱조롱 내걸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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