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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 이문재

삼대 - 이문재 -미래를 미래에게 할아버지는 낙타를 타고 아버지는 자동차를 탔다 아들은 지금 비행기를 탄다 하지만 손자는 다시 낙타를 탈 것이다 석유가 많이 나는 먼 사막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다 만들어서 썼지만 아들인 나는 다 사다 쓴다 내 아들은 내가 번 돈으로 다 사서 쓰다 말고 다 갖다 버린다 내 아들의 아들은 다시 다 만들어서 써야 할 것이다 지금 여기 우리 이야기다 모래언덕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중동에서 석유를 파내는 것과 황해 바다를 메우는 것이 다르지 않다 덕분에 사막의 아들딸은 비행기를 타고 우리의 아들딸도 차를 몰지만 비행기를 타고 자동차를 모는 아들딸의 잘못이 아니다 전적으로 아버지의 잘못이다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모든 아버지가 아들딸의 미래를 끊임없..

한줄 詩 2021.09.07

늦여름 후박나무 아래서 - 허문태

늦여름 후박나무 아래서 - 허문태 늦여름 후박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오르가즘이 끝난 여름' 늘어진 오후가 팽팽히 힘을 모은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오르가즘인지 오르가슴인지. 그 '오르가즘이 끝난 여름' 앞뒤로 몇 줄 문장을 만들어 끌고 가면 시가 될 것 같다. 오르가즘에 비유로 꽁꽁 묶어 앞으로 끌어 봐도 여름에 메타포를 걸어 뒤로 당겨 봐도 꼼짝하지 않는다. 따끔! 손보다 몸이 먼저 벌떡 일어났다. 티끌만한 개미가 발목을 물었다. 날 제 먹이로 생각하고 끌고 갈 모양이다. 무모함도 모르는 티끌 같은 녀석. 어! 개미 녀석 콧노래를 부르며 나를 끌고 간다. 옆에 있는 친구와 깔깔거리며 제 굴로 끌고 간다. 까맣게 탄 티끌만 한 녀석 여름의 절정에서 무엇을 느꼈기에 저리 힘이 세졌을까. 친구..

한줄 詩 2021.09.07

가을나비 - 박인식

가을나비 - 박인식 깊고 푸른 투명 너울대는 한 날개 한 날개마다 하늘 마디 꺾였다 휘고 흰 마디 다시 꺾이면 푸르고 깊은 슬픔이 아름다움을 가두네 아름다움도 저리 지독해지면 지독한 사랑처럼 수인(囚人)이 되고 마는가 매혹에 갇혀 입술 떨고 있을 뿐 아무 말도 열지 못하는 낮달 못 본 척 가을나비 한 마리 하늘 마디 접었다 폈다 폈다 접었다 *시집/ 언어물리학개론/ 여름언덕 언어물리학개론 - 박인식 -늘그막 늘그막이라는 말의 운율에서 그늘을 읽는 저녁 어슴프레 구겨지고 주름지는 언어물리학의 잔상들은 어떤 체념의 늘그막인가 동녘에 눈부시던 수사학 서녘으로 기운 지 오래 내 말의 움막에 그늘지는 이 초라한 문장은 얼마나 뜨겁던 격정의 늘그막인가 # 작가 박인식은 1951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나무에게 ..

한줄 詩 2021.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