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흰머리 진행 경위서 - 이송우

마루안 2021. 9. 8. 22:31

 

 

흰머리 진행 경위서 - 이송우

 

 

한 놈을 뽑으면 여럿이 솟았다

엄마의 머릿속 새치는

솎아내도 늘기만 하였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이 좋아

더 열심히 책을 읽었지만

도대체 그는 언제쯤

엄마 새치를 뽑아 줄 것인가

 

내 어린 무릎에 놓인

엄마 머리는 무거웠다

심통이 날 때면

나는 여럿을 잡아 뽑았다

 

아버지 없는 나,

엉터리로 뽑은 새치 때문에

백발이 된 울 엄마

사랑하는 박인순 선생님

 

그대여

내 새치를 뽑지 마시게

이것이 단 한 올도 건드리지 않은

내 흰머리, 더딘 진행 경위서

 

 

*시집/ 나는 노란 꽃들을 모릅니다/ 실천문학사

 

 

 

 

 

 

수면 장애 - 이송우

 

 

비 그친 오후 청파동 길바닥

돌맹이처럼 굴러다니는 사람들

저 감은 눈과 벌린 입속에서

나는 잠을 잔다

 

키우던 개를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때려잡던 복날 어른들처럼

순해진 고깃살을 소주로 삼키곤

나는 코를 곤다

 

돌림병으로 문 닫은 유령 도시

흰옷 입은 의사들이 보이지 않는다

단식하는 이들 옆에서 닭 다리를 뜯거나

발인일에 고인의 비난 성명 따위,

사람이 아프든 죽든 밥그릇은 중요하기에

 

기면 발작증  환자들처럼

언제 어디서든 나는

수없이 골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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