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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의 풍경 - 임연웅 개인전

포스터에서부터 눈을 붙잡는 전시회가 있다. 임연웅 사진전이 그랬다. 포스터에 있는 사진 한 점만 보고 와도 마음이 풍족해진다. 포스터에 나온 사진답게 전시장 맨 앞에 걸렸다. 멀리 황룡사지가 보이는 길이다. 오래 서서 들여다 봤다. 인사동 갤러리 이즈는 독특한 외관에다 감상하기 좋은 전시장이다. 인사동이든 청담동이든 생겼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거나 있었다가 없어진 화랑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인사동만 봐도 10년 넘게 같은 자리에 있는 화랑이 몇 개나 될까. 아마도 사설 전시장으로 접근성으로나 전시장 동선으로나 이 정도 갤러리 드물다. 발길을 붙잡는 전시가 있을 때 코로나 시국에도 종종 들르는 곳이다. iS 갤러리는 문익점의 후손이 세운 문중문고인 라는 영문 앞자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임연웅의 전시는 전국..

여덟 通 2022.02.26

심장이 뛰던 시절 - 정덕재

심장이 뛰던 시절 - 정덕재 겨울이 끝나 갈 무렵 바지를 꺼냈고 허리는 두꺼워졌고 종아리는 가늘어져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걷겠다며 마음먹었더니 미처 준비하지 못한 심장은 헉헉댄다 계단을 오르지 않고 가파른 고개를 넘지 않아도 숨이 가빴던 시절이 있었다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머니의 숨소리와 최루탄 터지는 소리와 흔들리지 말자는 혁명의 노래와 공장 굴뚝의 연기와 갈아엎는 배추밭이 어울려 심장이 뛸 때가 있었다 3층 계단만 올라도 숨이 가쁘다 허리띠 한 칸 때문에 콩당거리는 심장의 체면은 온데간데없다 계단은 높고 박동은 초침보다 빠르다 심장은 왼편에 있지만 반 뼘 정도 좌우로 움직일 때가 있다 *시집/ 치약을 마중 나온 칫솔/ 걷는사람 덧대어진 키스 - 정덕재 안경 쓴 가수 이상우가 '그녀를 만..

한줄 詩 2022.02.26

저물도록 - 박수서

저물도록 - 박수서 사는 일이 스스로 저버린 꽃밭에 앉아 꽃수를 놓거나, 수몰된 가계의 지붕 위를 날아오르는 텃새처럼 이앙기가 삼키고 뱉어버린 모판처럼 남겨진 추억에 우물쭈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미련 때문에 운명으로 떠나간 열망 저 편을 일몰이 긋고 간 심장의 붉은 두근거림은 저녁이 오면 해가 지는 일처럼 말없는 풍경이던지, 오래된 애인과 먹는 말 많은 밥상이면 좋겠어 제법 큰 눈이 내렸고 무거워진 가로수 쇠골처럼 내려앉은 나는 바라보는 일보다 지켜보는 일이 한창이야 앞질러 뛰어가는 세월의 넓적다리를 자세히 보면 알잖아 바라보는 눈은 때때로 삶을 짓눌렀던 단단한 근육을 먼저 알아보지만 지켜보는 눈은 오금이 저리도록 기어이 견뎌왔을 힘줄을 읽잖아 하여 지켜보는 눈은 사랑에 더 가까운 생명체야 눈 녹은 후 ..

한줄 詩 2022.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