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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일요일의 풍경 조각

가끔 전통 시장을 간다. 생선 가게 앞에서 두 사람이 낑낑거리며 대형 상자를 내린다. 와! 이렇게 큰 생선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딱 사람 크기다. 생선 대신 내가 저 관처럼 생긴 상자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전통 시장에서 내가 사는 건 과일이 제일 많다. 가끔 닭강정이나 꽈배기를 살 때도 있다. 오랜 기간 가는 단골 떡집에서 시루떡을 사기도 한다. 식성도 바뀌는지 나이 먹으면서 떡을 좋아하게 되었다. 예전에 그 사람은 늘 사랑을 확인했다. 가끔 내 표정을 보며 물었다.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건가요?" 그냥 웃지만 말고 빈말이라도 그렇다고 할 걸 그랬다. 사랑 점검의 마지막 대사는 늘 똑 같았다. "사랑에도 보증수표가 필요한 거예요." 내 사랑은 보증금은커녕 공수표였다. "개새끼" 그 사람이 마지막..

다섯 景 2022.02.27

늦은 흔적 - 우혁

늦은 흔적 - 우혁 너를 밟았다 그리고 내 손에 너의 발자국이 묻어 있음을 뒤늦게 알아챈다 손이 시렸고, 또 누군가의 화초처럼 난 늙는다 답이 정해진 질문이 아니기에 끝없이 되물어보는 버릇 언제나 당신은 두 번씩 답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구름이 발자국이며, 하늘이라 이름 붙인 어느 우주는 이토록 동그랗다 어떻게 하든 난 길을 따라갈 것이었으면 굳이 길을 길이라 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시집/ 오늘은 밤이 온다/ 삶창 버릇 - 우혁 늙지 마라 했던 짧은 충고는 손등 위에 주름으로 남았다 솔직히 거짓말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거짓말들은 의도와 상관없이 재림했다 오우 너는 얼마나 거룩했지 오늘, 지금, 그대로 늙지 마라 했던 충고는 알고 보면 고백이었다 예를 들면 자랑은 아니지만이라고 시작한 말들은 필히..

한줄 詩 2022.02.27

벤치의 혼자 - 박인식

벤치의 혼자 - 박인식 벤치에 혼자 앉아 있다 기다리는 그 무엇은 혼자 온다 하니까 아무도 누구를 기다리느냐 묻지 않는다 무대 위는 줄곧 나 혼자니까 연극 끝날 때까지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온다는 그 무엇은 혼자라도 끝내 오지 않아 아무도 누구를 기다리느냐 묻지 않을 것이니까 막이 내려와야 그 무엇이 혼자 오길 기다리지 않는 혼자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여기 벤치는 거기 조리 있는 벤치와는 달리 부조리 연극의 벤치 막 또한 올라간 적이 없어 아주 내려오지 않을 부조리의 막 연극이 끝난다 해도 나는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니까 *시집/ 내 죽음, 그 뒤/ 여름언덕 고흐가 고갱을 만났을 때 - 박인식 아를르에서 고흐가 고갱을 만났을 때 열다섯의 내가 남태평양 타히티섬에서 고갱을 만나는 밀항을 꿈꿨을 ..

한줄 詩 2022.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