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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성이 사라진 섬 - 이정희

북극성이 사라진 섬 - 이정희 서울역, 폐선 한 척 소주병에 묶여 있다 부력을 놓치고 기우뚱 균형을 잃어 허겁지겁 말뚝에 매어졌다 섬과 섬 사이 잔잔한 수면에 햇살이 앉았다 가고 말라가는 바다의 기억이 폐유처럼 캄캄하다 밤마다 높아지는 문턱들, 동전 몇 개 흩어져 있다 닻을 내리고 꼼짝 않고 누웠는데 익숙한 파도 소리가 쟁쟁하다 방죽 긴 의자에 악몽의 냄새가 뿌리내린다 고집스레 돌아갈 바다만 기다리고 있는데 자꾸만 발을 묶는 것들 따뜻한 거실과 된장 냄새나는 식탁이 그립다 종아리 시린 바닷바람에 몸을 움츠린다 바닷새는 종종걸음 치며 섬으로 돌아간다 거친 물살 맞으며 두려움 없이 많은 해협을 향해했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물결이 폐선을 흔든다 앰뷸런스 붉은빛이 빠르게 돌아간다 노숙의 섬이 가라앉는다 *..

한줄 詩 2022.03.01

흑백 무덤 - 김륭

흑백 무덤 - 김륭 뇌를 개처럼 부려 심장까지 내려가 보는 날이 있다. 나는 아이가 된다, 무덤을 보면 뭔가 모자라게 늙었던 내가 꽉 차오르는 느낌 미친 듯이 나는, 나를 완전히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벼운 한숨과 깊은 농담을 나누며 지나가는 바람마저 가만히 노루 똥처럼 그냥 옆에 앉히면 보인다. 기억이 몸을 앞질러 가서 지은 집, 뒤돌아보면 심장과 함께 씹어 먹고 싶은 혀, ..... 무릎, 그리고 빌어먹을 나이 같은 것 그러니까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치고 가는 기억이 있다. 나는 모르는 척한다. 그것은 정말 모른다는 말이 파 놓은 무덤, 개를 뇌처럼 부려 오래전에 찢긴 눈꺼풀이라도 가져온다. 고작 일 년에 두어 번 찾아뵙는 아버지, 당신 유골이 담긴 작은 항아리가 관상용 화분처럼 보일 ..

한줄 詩 2022.02.28

아버지의 호야등 - 김용태

아버지의 호야등 - 김용태 철없던 때, 결국 막차를 놓쳤다 잔별들 바람에 쓸리어 가자 잇대어 비가 내렸다 쉼 없이 걸었다 낮에도 혼자 넘기 꺼려하는 진고개 노망든 귀머거리 여자가 얼어 죽었던 움막이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고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낚아 챌 것만 같은 카랑카랑한 욕지거리와 함께 굶은 짐승처럼 오도카니 도사리고 있었다 몇 해 전인가, 아랫말 춘식아재가 술에 취해 돌아오던 길에 도깨비에 밤새 씨름을 하다 살아 왔다던 애장터, 칠흙 같은 이 소나무 숲이 끝나면 그 곳인데 무사히 지날 수 있을까 그 때 불 빛 오, 멀리서 흔들거리며 다가오는 *시집/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오늘의문학사 우골탑 신화(牛骨塔 神話) - 김용태 젊은 아버지께선 정남향, 볕 잘 드는 곳에 그분의 거처를 마련하시고 식구를 늘리..

한줄 詩 2022.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