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폭산장 바람 소리 - 김기섭 물빛 고운 비선대를 떠나 천불(千佛)이 거처한다는 천불동으로 접어들었다. 귀면암을 지나 양폭산장에 도착할 무렵 대청에 낙엽이 다 졌다는 풍문이 들려왔고, 산장 앞 단풍잎들은 눈물겹게 빛났다. 만경대 꼭대기, 새벽부터 비가 뿌렸다. 공친 산행, 어두운 산방에 일없이 둘러앉아 소슬바람에 삐걱거리던 문소리와 떨어지는 단풍잎을 바라보면서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낮이 되면서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고 살아남은 정현 형이 가수 장사익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별처럼 슬픈 찔레꽃 향기는 골짜기를 떠돌다가 가을비에 젖어 들고 밤새 바람이 세찼다. 아침 햇살을 등지고 밖을 나서는데 그새 가을이 다 갔는지 지천으로 깔린 붉은 잎을 차마 밟기 어려웠다. *시집/ 달빛 등반/ 솔출판사 꿈꾸는 수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