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성이 사라진 섬 - 이정희
서울역, 폐선 한 척 소주병에 묶여 있다
부력을 놓치고 기우뚱 균형을 잃어 허겁지겁 말뚝에 매어졌다 섬과 섬 사이 잔잔한 수면에 햇살이 앉았다 가고 말라가는 바다의 기억이 폐유처럼 캄캄하다
밤마다 높아지는 문턱들, 동전 몇 개 흩어져 있다 닻을 내리고 꼼짝 않고 누웠는데 익숙한 파도 소리가 쟁쟁하다
방죽 긴 의자에 악몽의 냄새가 뿌리내린다 고집스레 돌아갈 바다만 기다리고 있는데 자꾸만 발을 묶는 것들
따뜻한 거실과 된장 냄새나는 식탁이 그립다 종아리 시린 바닷바람에 몸을 움츠린다 바닷새는 종종걸음 치며 섬으로 돌아간다
거친 물살 맞으며 두려움 없이 많은 해협을 향해했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물결이 폐선을 흔든다
앰뷸런스 붉은빛이 빠르게 돌아간다 노숙의 섬이 가라앉는다
*시집/ 꽃의 그다음/ 상상인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람들이 흩어질 때 - 이정희
하안 사거리
급정거하면서 미끄러지는 오토바이
새 한 마리 돌발로 날아오른다
붉은 신호등이 횡단보도에 미끄러지고
가로수는 일제히 한 방향으로 쏠린다
속도가 오토바이를 관통하면서
다급한 굉음을 쏟는다
바퀴의 입술이 급정거로 부르튼다
바퀴가 뒤집어진 채 느릿느릿 돌고 있다
아슬아슬 비켜가는 차들과
출렁거리는 헤드라이트가
압축된 불빛을 핥는다
웅크린 뼈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
퀭한 눈이 엉킨 전선처럼 꺼져간다
와들와들 떨고 있는 사내
함부로 찢어진 바지 틈새로 검붉은 피가
엉키고 있다
어쩌면 사내는 사거리의 덫에 걸린지도 모른다
중앙선이 칭칭 감아 돌린 그 자리
사이렌 소리가 새파랗게 질려온다
간신히 아스팔트에 떠 있던 깨진 핼멧이
툭 고개를 떨군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람들이 흩어질 때
# 이정희 시인은 경북 고령 출생으로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을 수료했다. 2020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가 당선되었고 제3회 해동공자 최충문학상 시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꽃의 그다음>이 첫 시집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면의 쾌락 - 우대식 (0) | 2022.03.02 |
---|---|
식스맨은 중독성이 강하다 - 서화성 (0) | 2022.03.01 |
흑백 무덤 - 김륭 (0) | 2022.02.28 |
아버지의 호야등 - 김용태 (0) | 2022.02.28 |
늦은 흔적 - 우혁 (0) | 2022.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