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흑백 무덤 - 김륭

마루안 2022. 2. 28. 21:48

 

 

흑백 무덤 - 김륭

 

 

뇌를 개처럼 부려

심장까지 내려가 보는 날이 있다.

 

나는 아이가 된다, 무덤을 보면

뭔가 모자라게 늙었던 내가 꽉 차오르는 느낌

미친 듯이 나는, 나를 완전히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벼운 한숨과 깊은 농담을 나누며

지나가는 바람마저 가만히 노루 똥처럼 그냥

옆에 앉히면 보인다.

 

기억이 몸을 앞질러 가서 지은

집, 뒤돌아보면 심장과 함께 씹어 먹고 싶은 혀, .....

무릎, 그리고 빌어먹을 나이 같은 것

그러니까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치고 가는

기억이 있다.

 

나는 모르는 척한다. 그것은 정말 모른다는 말이

파 놓은 무덤, 개를 뇌처럼 부려 오래전에 찢긴

눈꺼풀이라도 가져온다.

 

고작 일 년에 두어 번 찾아뵙는

아버지, 당신 유골이 담긴 작은 항아리가

관상용 화분처럼 보일 때가 있어서

 

나는 또 흑백으로 웃는다.

수액이 가득한 링거를 꽂고 돌아다니는

어린이 환자처럼, 다시 오지 않을 사람들이

한 땀 한 땀 꿰매 입혀 준 기억들을 입고 저만치 오는

무덤을 바라볼 때가 있다.

 

너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늙은 토끼가 아기 족제비에게 쫓기듯

내가 내 안에 파 놓은

무덤을 오가듯

 

 

*시집/ 나의 머랭 선생님/ 시인의 일요일

 

 

 

 

 

 

낙타 - 김륭


떠나는 것은 매번
당신이 아니라 나였음을
내가 나를 떠나고, 떠나는 나를
붙잡을 수 없어서 한세상이었던 것을

낙타처럼, 저를 혹으로
당신 또한 혹으로 그 사이에
짐짝 같은 한세상
올려놓고

어디쯤이면 끝났다고
한 사랑이, 한 사랑을 다했다고
울 수 있을까

아직도 떠나는 중이다
낙타들은 제각기 낙타가 있어
사막이 있는 거라고
묵묵히

 

 

 

*시인의 말

 

식물 합시다.

 

죽어서도 뛸 수 있는 문장 위로

박정임 여사를 옮기고 있다.

 

요양병원 화단에 앉아 있던 맨드라미가

엄마, 하고 불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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