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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창조해놓고도 - 김수우

신을 창조해놓고도 - 김수우 청개구리 두마리 내 방에 찾아든 날 우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죽음은 거미를 닮아 어디서나 집을 짓는 중이다 어쩌자고 저 어린 것들 여기 닿았나 화성 탐사를 하듯 망망대해 우주를 건너 내 방으로 들어선 두 마리 초록 등이 선득했다 순수한 초록은 얼마나 날카로운가 들어온 데로 나가겠지, 외면했다 무서웠다 상추도 뜯다가 개밥도 주다가 하루를 지내고 까무라친 한 놈을 모서리에서 발견했다 빗물에 내놓았다 엉금거렸다 괜히 사진첩 들추던 이틀째 한 놈을 찾았다 빗물에 내놓아도 등이 뻣뻣하다 당장 신을 만들었다 신이 필요했다 모래알만 한 기적이 간절했다 기도했다 살려주세요 방 안은 수분 한 방울 없는 광막한 사하라 우물을 숨기지 못한 내 영혼이 바삭거린다 죽음은 원래 알몸이어서 어디서나 집을..

한줄 詩 2022.03.05

어떤 순간 - 최규환

어떤 순간 - 최규환 마음에 몰아치는 날엔 자주 눈에 충혈이 온다 한순간도 존재였던 적이 없다는 생각과 무엇이 되거나 혹은 무엇으로 남아야 되는지가 분명하지 않아 바람 드는 곳에 물든 붉은 목단처럼 나와 만나고 헤어졌던 십수 년의 세월에 관한 영상이 드나들었던 그 길었던 시간이 스친 건 몇 초에 불과하다 충혈이 지속되는 것에 맞춰 허공에 오르는 일처럼 아득함이, 말할 수 없는 의미심장이 들어차는 듯하다 그때보다는 달라진 모습으로 인생은 와 있었고 가늠할 수 없는 방향을 향해 있겠다는 다짐도 하지만 위태로움이었거나 멀리를 향한 마음을 붉게 쳐들고 둥둥 떠다닐 때 소리 밖을 떠나지 못하는 짐승의 울음 하나가 있었다 *시집/ 설명할 수 없는 문장들/ 문학의전당 신경통 - 최규환 깨밭 옆집에 살던 여자는 땅주인..

한줄 詩 2022.03.05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 사울 레이터 사진전

내가 좋아하는 사울 레이터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서울에 좋은 전시장이 많이 있지만 남대문 시장 건너편 남산 아래 있는 피크닉 만한 공간이 있을까. 아주 오래된 동네였는데 이런 좋은 전시 공간이 생겼다. 남산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 가기에도 좋은 곳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스마트폰 시대에 이렇게 옛날 냄새가 나는 동네도 드물다. 올초부터 가야지 했다가 오늘에야 갈 수 있었다. 오전에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를 마치고 바로 전시장으로 갔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방역에 철저했다. 무한정 표를 팔지 않고 매 시간 한정된 관객만 받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예매할려고 하면 늘 매진이었는데 오늘 표도 3주 전에 겨우 예매한 것이다. 사설 전시장에서 이런 행정 쉽지 않다. 더구나 이 전시는 얼마나 인기가 많은가. 입구에..

여덟 通 2022.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