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편한 잠 - 송문희

마루안 2021. 4. 28. 19:26

 

 

불편한 잠 - 송문희


뿌리가 뽑혀 떠내려온 몸들
음지에 구겨져 있다
빌딩숲은 야멸차다
햇빛을 끊어버리고 찬바람만 떠먹인다
어떤 나무들은 목에 이름을 걸고
이름을 찍는 순간 회전문이 열린다
지하도로 몰린 풀들은
이름마저 잊어버린 잡초인가
혹여 한곳에 오래 버티면 뿌리내릴 수 있을까
무료 급식에 기대 그 자리에 다시 눕는다
눈총을 덮어쓴 까만 얼굴은
체면을 까먹고 느릿느릿 근육을 줄이고 있다
박스로 구들을 깔고 신문지로 낮잠을 덮었다
지나가는 바람들은 멈춰 서서
무명을 딛고 일어선 가수의
넘치는 햇살을 읽느라 웅크린 잠을 펄럭거린다
불편에 길들여진
노숙의 잠은 금 하나 가지 않는다


*시집/ 고흐의 마을/ 달아실

 

 

 

 

 

 

흔들리는 봄 - 송문희

 

 

툴툴거리는 용달차 뒤칸

솜사탕 기계에 기댄 채 단잠에 빠진 여자

신호등이 바뀌어도 주춤거리는 사내

길게 늘어선 차량들 쏟아지는 눈총에 뒤통수가 따가워도

그저 따사로운 햇살이려니,

백미러에 비친 사내의 눈엔 하늘하늘 벚꽃이 괜찮다, 괜찮다 흩날렸다

때마침 팔랑이는 작은 현수막

 

'사탕보다 달달한 솜사탕 있음'을

 

'솜사탕보다 달달한사랑 있음'으로 오독(誤讀)하는 사이

 

비몽사몽 흔들리다 막 깬 봄

 

 

 

 

# 송문희 시인은 경북 영주 출생으로 경북대 대학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 계간<시와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 <고흐의 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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