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현수막의 궁금증 - 고태관

마루안 2021. 6. 21. 22:02

 

 

현수막의 궁금증 - 고태관

 

 

언제 다 마를까

비에 젖은 글자가 비스듬하게 번진다

 

소액대출이자없는행복을붙잡으세요

 

하루에 한 마디씩 매달 수 있다면

스스로 내걸리는 사람도 있겠지 침묵이 되어

하루에 하나씩 묶인 줄을 풀어낸다면

되돌리고 싶은 고해성사 같을까 후회처럼

 

아무도 잠들지 못하는 밤

사람들은 잠든 나를 구경하러 오겠지

모두가 잠든 밤에 부스스 깨어난 나는

사람들의 헝클어진 이불을 덮어 주러 다닐 거야

 

하루에 한 명씩 죽어야 한다면

다음 날 한 명씩 살릴 수 있다면

어제 죽은 내가 오늘 살아날 수 있을까

 

기회의땅으로아메리칸드림미국워킹홀리데이

 

떠난 사람은 내 차례가 왔다고 기뻐할까

도착한 곳에서 먼저 떠나온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돌아온 사람은 보고 싶은 사람을 찾지만 떠나고 없다

길을 나선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이 어디서든 마주치기를 빌었다

 

황둔삼거리뺑소니목격자를찾습니다

 

남은 사람이 기도를 매달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모든 것이었다

 

 

*시집/ 네가 빌었던 소원이 나였으면/ 걷는사람

 

 

 

 

 

 

가로등은 모른다 - 고태관

 

 

어두운 길로 들어선다 불이 켜지길 기다린다 기다림처럼 캄캄한 건 답답하잖니 뭔가 어른거리지만 빛은 아니다 두리번거린다 언제 켜질까 내기를 하고 싶지만 혼자여서 살짝 벌어진 입을 다문다

 

당신은 저기에서부터 여기까지 왔다 여기가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어두운 길을 걷는다 켜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빛을 걱정한다 불이 켜지면 그 방향으로 달려 볼까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게 나으려나 밝아졌을 때 기분에 맡기기로 한다 기분이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당신의 기분이 당신을 알까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왔다 저기가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도 없는 어두운 길에는 누구든 나타날 수 있지 뭐든 켜질 수 있어 앞으로만 걸어간 발자국이 찍혀 있을 것 같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어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당신은 여기가 어딘지 알지 못한다

 

당신이 여기에서 저기로 떠나서인지 여기로 오고 있는 당신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 고태관. 래퍼 피티컬(PTycall). 1981년 울산에서 태어나 1999년 고등학교 락밴드에서 래퍼로 활동했다. 2000년부터 대학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2007년 결성한 시를 노래하는 '트루베르'에서 리더로 활동했다. 2020년 5월 15일 세상과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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