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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 전규환

나는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날것 그대로의 리얼리티와 환타지가 결합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 제한 상영가 판정을 받고 심의 통과가 안되어 한동안 개봉을 못하고 갇혀 있다가 몇 군데 손을 봐 재심을 통과한 후에야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전규환 영화는 늘 이렇게 생채기를 몇 개씩 남기며 관객에게 선을 보인다. 고아원에서 자란 정씨는(조재현) 어렸을 때 입양 되어 양장점을 하는 새엄마의 아들과 함께 컸다. 애인에게만 한눈을 파는 엄마 밑에서 형제는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된다. 이후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형제는 엄마에게 버림을 받는다. 사고로 곱추가 된 정씨는 시체 안치소에서 시신을 닦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동생은 양장점 재단사로 일하면서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트렌스젠더다. 이것부터가 영화..

세줄 映 2014.07.15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

유시민의 책은 가능한 읽는다. 아마도 그가 낸 책은 거의 대부분 읽었을 것이다. 신간을 바로 읽지 못하면 나중에 찾아서라도 꼭 읽는다. 책이란 미루다 보면 읽을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에 읽어야지 했다가 잊기도 한다. 이 책이 그랬다. 신간 소식을 접하면 건너 뛸 책은 빼고 고르고 골라서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린다. 내가 책만 읽으면서 밥먹는 사람도 아니고 작정하지 않는 한 바로 읽지 못한다. 새로운 책이 나오면 점점 목록만 늘어나고 당연 먼저 올라온 책은 뒤로 밀리게 된다. 잊고 있던 책을 만나는 계기가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다. 유시민의 를 읽고 나서 이 책에 손이 닿은 것이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유시민의 자전적 에세이라 해도 되겠다. 어렵고 멀게 생각하는 헌법에 관한 글을 시원시원하게 썼다. 나처..

네줄 冊 2014.06.04

영암 월출산

월출산은 다른 국립공원에 비하면 등산로가 단순하다. 천황사에서 시작해 도갑사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거의 30년 만에 오르는 것 같다. 이 산이 너무 멀리 있기도 하지만 가볼 산이 너무 많아서 두 번씩 가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철부지 시절 젊음을 낭비하며 청춘을 증오할 때 동무 몇과 청바지를 입고 올랐었다. 그 때는 월출산이 국립공원이 아니었지만 구름다리는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영암의 가을 들판이 눈물나게 좋았다. 다른 기억은 가물가물 한데 황금 들판은 지금도 기억이 뚜렷하다. 낭비해버린 청춘이 내 나이듦의 자양분이 되었지만 언제 이렇게 멀리 와 버렸을까. 천황사는 아주 소박한 절이다. 전국 여느 절처럼 확장 공사를 하는지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했다. 초록으로 물 들고 있는 월출산 바위들이..

일곱 步 2014.05.18

덕룡산, 주작산

덕룡산과 주작산은 능선이 붙어 있어서 대부분 같이 등산을 한다. 강진 소석문 쪽에서 시작하면 덕룡산이 먼저 나오고 해남 오소재에서 출발하면 주작산을 먼저 오르게 된다. 오소재 쪽이 다소 험한 편이라 출발을 소석문에서 시작했다. 강진 시내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소석문 입구 마을에서 내렸다. 버스 기사가 산을 잘 아는지 들어가는 입구를 자세히 설명해 주면서 내려준다. 평화로운 마을의 마늘밭으로 봄날이 가고 있었다. 주작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 등산로는 다소 험한 편이다. 이 줄을 타고 경사진 바위를 올라야 한다. 진달래 지고 난 다음 철쭉이 바위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긴 세월 스스로 자리를 잡고 살아온 철쭉들이다. 30분쯤 부지런히 오르면 덕룡산 능선이 시작되는 산마루에 닿는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멀리..

일곱 步 2014.05.11

서산 아라메길

개심사를 갈 때부터 이 길을 걷기로 작정을 했다. 해미에서 걸어 개심사로 갈까 아니면 개심사에서 출발해 해미읍성으로 걸을까 방향만 정하지 않았다. 일정을 보니 개심사에서 걷는 게 낫겠다 싶었다. 개심사를 실컷 구경하고 뒷산까지 오른 후에 이 길로 접어들었다. 서산시에서 조성한 아라메길이다. 이름도 멋지다. 바다를 뜻하는 아라와 산을 뜻하는 메를 합쳐 순 우리말인 아라메가 되었다. 말 그대로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길이다. 아직 완전 개통은 아닌데 몇 년 후에는 서해안 대표 트레킹 길이 될 듯하다. 입구에 이렇게 화사한 꽃이 나그네를 반긴다. 신고식 제대로 한다. 꽃이 지면 새잎이 돋는다. 자연의 이치다. 봄은 연둣빛으로 변해 더욱 무르익었다. 산불이 났는가 보다. 산 한쪽에 화상 자국이 선명하다. 이 와중..

일곱 步 2014.05.07

진안 마이산과 탑사

전날 전주를 거쳐 아침 일찍 진안행 버스에 올랐다. 진안 터미널에 도착하니 장날이었는지 시골 노인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늘 이런 풍경에 눈길이 간다. 화사하고 세련된 것보다 오래 되고 낡은 풍경을 좋아한다. 시골 버스는 배차 시간이 길다. 심지어 오전에 한 대 오후에 한 대만 있는 경우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의 조건이다. 오전에 들어갔다 유유히 시골 풍경에 빠졌다가 오후에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나온다. 이 할머니들은 얼마나 기다려야 당신이 탈 버스가 오는 것일까. 이번 여행은 마이산을 직접 오르지 않고 둘레 코스를 도는 것이다. 이렇게 마이산 주변을 둘러 본 것은 처음이다. 이 등산 코스는 그렇게 험하지도 않고 산길을 걷는 동안 줄곧 말 귀처럼 쫑긋 솟은 마이산이 보이는 매력이 있다. ..

여섯 行 2014.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