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은 다른 국립공원에 비하면 등산로가 단순하다. 천황사에서 시작해 도갑사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거의 30년 만에 오르는 것 같다. 이 산이 너무 멀리 있기도 하지만 가볼 산이 너무 많아서 두 번씩 가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철부지 시절 젊음을 낭비하며 청춘을 증오할 때 동무 몇과 청바지를 입고 올랐었다. 그 때는 월출산이 국립공원이 아니었지만 구름다리는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영암의 가을 들판이 눈물나게 좋았다. 다른 기억은 가물가물 한데 황금 들판은 지금도 기억이 뚜렷하다. 낭비해버린 청춘이 내 나이듦의 자양분이 되었지만 언제 이렇게 멀리 와 버렸을까.
천황사는 아주 소박한 절이다. 전국 여느 절처럼 확장 공사를 하는지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했다.
초록으로 물 들고 있는 월출산 바위들이 가는 봄을 아쉬워하고 있다.
오래 전에 다리를 후들거리며 건넜던 구름다리다. 새로 보수를 했는지 튼튼한 구름다리가 반갑게 맞이했다.
구름 다리 사이로 한 줄기 아침 안개가 바람처럼 지나간다. 저 아래 들녁은 아직 안개 속이다.
안개 사이로 아스라히 보이는 강진 벌판에 봄이 한창 무르익었다. 곧 여름으로 치달을 것이다.
철쭉이 피기 시작한 능선이 끝없이 펼쳐진다. 어떻게 평야지대에 이런 암산이 불쑥 솟아 올랐을까.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월출산이다. 넋을 잃고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월출산에 조금씩 안개가 걷히고 풍경에 취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뒤쳐진다.
드디어 정상이다. 남녘의 국립공원은 사람이 많지 않아 좋았다. 앞사람 엉덩이만 보면서 올라가는 설악산과는 등산 맛이 다르다.
정상에서 한참을 머물렀으나 올라오는 사람이 없다. 걸어 온 등산길을 돌아 본다. 황홀하다.
도갑사 쪽으로 하산을 했다. 등산길이 비교적 완만해서 걷기에 아주 좋았다.
날씨가 너무 좋아 걸으면서 자꾸 하늘을 쳐다 봤다. 시린 하늘을 보니 하품 할 때처럼 눈물이 났다.
월출산에서 내려올수록 여름색이 완연하다. 연둣빛 오후에 온전히 물든 하루였다.
도갑사에 다다르자 계곡물 소리가 요란하다. 잠시 지친 발을 담그고 봄날의 오후를 나른하게 즐겼다.
도갑사를 둘러본다. 이곳 역시 고요함에 묻혀 있다. 호젓한 경내가 딱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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