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적으로 그대가 그리울 때 - 유용선 통속적으로 그대가 그리울 때 - 유용선 비록 숙녀여, 지금 그대가 제 맘에 꼭 맞는 연인을 찾아 평생의 동반자로 삼았다 하더라도 다함 없는 축복의 언어들이 시기와 질투로 빛바래진 않을 테니 한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쉬고 같은 땅 위를 밟고 사는 동안 내 젊은 날의 귀한 손님이여, 단 하.. 한줄 詩 2017.11.29
벼랑 위의 사랑 - 차창룡 벼랑 위의 사랑 - 차창룡 모든 사랑은 벼랑 위에서 시작되더라, 당신을 만나고부터 벼랑은 내 마음의 거주지, 금방 날아오를 것 같은 부화 직전의 알처럼 벼랑은 위태롭고도 아름다워, 야윈 상록수 가지 붙잡고 날아올라라 나의 마음이여, 나의 부푼 가슴에 날개 있으니, 일촉즉발의 사랑.. 한줄 詩 2017.11.29
아름다운 사람 - 이성선 아름다운 사람 - 이성선 바라보면 지상에서 나무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늘 하늘 빛에 젖어서 허공에 팔을 들고 촛불인 듯 지상을 밝혀준다. 땅 속 깊이 발을 묻고 하늘 구석을 쓸고 있다. 머리엔 바람을 이고 별을 이고 악기가 되어온다. 내가 저 나무를 바라보듯 나무도 나를 바라보.. 한줄 詩 2017.11.29
마음의 정거장 - 김명인 마음의 정거장 - 김명인 집들도 처마를 이어 키를 낮추는 때 절은 국도변 따라 한 아이가 간다 그리움이여, 마음의 정거장 저켠에 널 세워두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 저기 밥집 앞에서 제재소 끝으로 허술히 몰려가는 대낮의 먼지바람 십일월인데 한겨울처럼 춥다 햇볕도 처마 밑까.. 한줄 詩 2017.11.29
중년의 질병 - 마종기 중년의 질병 - 마종기 1. 꽃 해늦은 저녁, 병원 뜰에서 꽃에게 말을 거는 사람을 본다. 조용히 건네는 말의 품위가 깨끗하고 거침이 없다. 나도 말을 먼저 했어야 했다. 꽃 하나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는 사람 꽃에게 말하는 이의 길고 추운 그림자, 저녁의 꽃.. 한줄 詩 2017.11.29
치매에 관한 치명적인 소회 며칠 전에 친구 아버님이 세상을 뜨셨다. 치매 초기부터 10년 가까이 집에서 돌봄을 받다가 나중 상태가 악화되어 요양원으로 모신 지 2년 조금 지나서 돌아가신 것이다. 당신이 50대일 때 처음 뵈었다. 가끔 주말이면 친구와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온 적이 있다. 집이 정릉이었는데 친구 아버님은 교육자였다. 일요일 늦은 아침에 일어나 퉁퉁 부은 얼굴로 화장실에 갈 때면 당신은 거실에서 독서를 하고 계섰다. 딱 선비가 어울렸다. 언제나처럼 한치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다. 인사를 하면 돋보기 너머로 가볍게 목례를 보내고는 다시 책보기에 열중하셨다. 친구도 나처럼 5남매 막내였는데 그래서 친구와 아버지는 가족 중 비교적 살가운 관계였다. 술 담배도 안 하시고 휴일이면 등산을 하거나 가까운 산을 운.. 열줄 哀 2017.11.28
말하지 않는 한국사 - 최성락 역사는 내가 살던 시대가 아니면 천상 기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내가 사는 현재도 하나의 사건을 달리 해석하거나 평가하는데 먼 옛날에야 오죽 하겠는가. 광주항생이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 민중들의 항거인데 누구는 북한군이 내려와 일으킨 폭동사건이라 하지 않던가. 그 외에 유서대필 사건이나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 등 일어난 당시와 현재 사실이 완전히 달라진 역사적 사건이 부지기수다. 동학농민항쟁도 당시대에는 동학란이라 했다. 지금은 부정한 치세에 항거한 민중 혁명으로 인정 받고 있다. 물론 아직 동학농민전쟁,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운동 등 확실하게 정리된 명칭이 없기는 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부르는 명칭 바뀐 역사적 사건이 많다. 단종 복위를 계획했던 사육신이 세조에게는 역적이었듯이 어느 쪽에서 보.. 네줄 冊 2017.11.28
새치가 많은 가을 - 전동균 새치가 많은 가을 - 전동균 아내 심부름으로 두부 한 모 사러 가는 저녁이었다 큰길을 놔두고 아파트 뒤 공터 지나 나무들 사이 소로를 고개 숙여 걸어가는데 누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좀 천천히 쉬었다 가라고, 이 아름답고 좋은 풍경이 보이지 않냐고 이마와 가슴에는 적황의 단풍.. 한줄 詩 2017.11.28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 - 허수경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 - 허수경 문득 나는 한 공원에 들어서는 것이다 도심의 가을 공원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 저녁에 지는 잎들은 얼마나 가벼운지 한 장의 몸으로 땅 위에 눕고 술병을 들고 앉아 있는 늙은 남자의 얼굴이 술에 짙어져 갈 때 그 옆에 앉아 상처 난 세상의 몸.. 한줄 詩 2017.11.28
바람의 작명가 - 김태형 바람의 작명가 - 김태형 어느 작명가가 지은 것은 내 이름만은 아니다 지나가는 이를 불러다 얼마를 주고 이름을 지었다는데 척 이름자를 적어놓고는 장차 시인이 될 운명이라고 했다든가 그이는 그렇게 말했다 한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운명이라는 게 다가온 것일까 그게 아니.. 한줄 詩 2017.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