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꽃잎 한 장 지는 일이 - 장시우

마루안 2018. 5. 8. 23:29



꽃잎 한 장 지는 일이 - 장시우



느리게 걸으며
한 호흡을 아껴보니
그 숨길이 달고 깊다


쌀 한 톨 천천히
꼭꼭 씹어보니
그 맛이 깊고 달다


눈과 귀를 열고
세상에 펼쳐지는 일들을 헤아리니
죽고 살고 찌르고 버리고....
생사를 넘나드는 일들이 분과 초를 다투며 일어난다


오늘 누군가 또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갔다
사람이 세상과 이별하는 마지막 순간
21그램의 영혼이 빠져나간다는데
그때 걸리는 시간이 일초의 몇 분의 일이라던데
그때 살아온 일생의 파노라마로 펼쳐진다는데


우주의 먼지보다 작은 나는
느리게 가라앉는 일을 생각한다


지나던 바람에 꽃잎 또 떨어진다
그 흔들림이 홀가분하다



*시집, 벙어리 여가수, 문학의전당








달아난 시간 - 장시우



벽시계가 한동안 멈춰 있었네
나는 세상 밖의 시간이 멈춘 줄 알았지
그러나 멈춘 건 내 시계뿐
그 사이 시간은 더 멀리 달아났네
나보다 먼저 간 시간이여
그 자리는 환했는가
내가 술에 취한 그때도
내가 절망에 빠진 그때도
그 자리는 환하고 빛이 났던가
내가 쫓아간 그 자리는
빛나지 않았네
이미 낡아 빛나지 않았네
더 이상 환하지 않았네
모든 것을 손에 놓아버리고서야
내가 흘려버린 그것들이 빛이 났네
세상은 왜
뒤돌아볼 때만 아름다운가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나무처럼 우리가 - 이강산  (0) 2018.05.09
늦은 봄비 - 서범석  (0) 2018.05.09
사랑, 우울한 병동 2 - 김이하  (0) 2018.05.08
어머니 - 김초혜  (0) 2018.05.08
단호한 것들 - 정병근  (0) 2018.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