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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을 가다

장항은 서천군에 속한 읍인데도 서천보다 더 많이 알려진 지명이다. 기찻길 종점이어서 노선도 장항선으로 불린다. 장항을 여러 번 갔다. 기차로도 버스로도 종점은 늘 장항이었다. 좋아 하는 도시 군산을 갈 때도 장항에서 내려 바지선을 타고 건넜다. 장항은 번성했던 흔적을 안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곳이다. 이번의 장항 여행은 딱히 갈 곳을 정하지 않고 정처 없이 천천히 걷기로 했다. 뒷골목에 들어 서자 가을이 자리를 잡기 위해 서성거리는 중이다. 익어 가는 어느 집 대추나무가 가을을 맞기 위해 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번창했던 시절 화물을 실어 나르던 기찻길이다. 장항 거리 곳곳에 이런 폐선이 있었다. 군산으로 가는 바지선이 떠나던 항구다. 고깃배보다 낚싯배가 더 많다. 쓸쓸함이 감도는 골목을 걷는다. 나..

여섯 行 2018.09.27

가을 데리고 서천 여행

9월이 가기 전에 가을을 데리고 서천 여행을 했다. 내게는 가까우면서 먼 곳, 자주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곳, 일단 떠났다. 먼저 마량 포구로 갔다.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부러 한가한 날을 골랐다. 오래 바라다를 내려다 보았다. 옛날에 없던 공원이 조성 되었다. 아마도 최초 셩경전래지를 조성할 때 함께 만든 모양이다. 마량진은 한국에서 최초로 성경이 전래 된 곳이다. 그 기념관이 만들어졌다. 홍원항까지 걷기로 했다. 걷다 보면 여러 마을 입구의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포장길을 걸었다. 이 길은 관에서 조성한 해맞이길 일부다. 장승이 줄줄이 서서 반긴다. 옛날 이 길에 장승이 서 있던 장소라고 한다. 바다를 벗어나 잠시 쉬고 있는 배를 만났다. ..

여섯 行 2018.09.27

아무 말도 없는 추석날 - 김이하

아무 말도 없는 추석날 - 김이하 윗목도 아랫목도 없는 방에 가족이라고 모여 저녁밥을 먹고 텔레비전만 멍하니 바라보며 말이 없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윈 어머니 늦도록 장가 못간 아들, 며느리 집 나간 아들 어미 없는 아이들, 아비 없는 아이들 할말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입이 없는 것도 아닌데 모두 말이 없이 길게 누워 심드렁하니 누웠다가 이내 잠들거나 방 밖에 멀리 보이는 달을 보거나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거나 텔레비전은 밤새 켜 있고 윗목도 아랫목도 없는 방에 이제는 아물었을 법한 상처들 한 가득 재워 놓고 그러고도 아무 말 없이 깨어나 차례를 받들고 항아같은 그리움으로도 오지 않은 사람 가서는 오지 않는 사람들을 먼 눈가에 그려보는 것인지 서둘러 밥을 먹고 자리를 뜬다 가족이라고 모여 놓고도 가족이 아닌..

한줄 詩 2018.09.22

능소화가 핀 파란 대문집

이 꽃이 능소화라는 것은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어릴 적 동네 중간쯤에 부잣집이 있었다. 대문은 언제나 굳게 닫혀 있었다. 농사와 집안 일을 거드는 부부가 바로 옆집에 살면서 그 집을 드나들었던 것으로 안다. 아마 머슴 비슷한 거였을 것이다. 아픈 사람이 있어서 그 집 어머니는 굿을 자주 했다. 이따금 골목을 지나가다 창백한 얼굴에 수염 덥수룩한 젊은 남자를 볼 때가 있었다. 아프다는 그 집 아들이다. 그가 한동안 안 보일 때는 멀리 원정 치료를 위해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집에서는 자주 징소리가 들렸다. 밤이면 외출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고함 소리와 부부 싸움 소리가 들여왔다. 아버지는 굿을 반대한다고 했다. 동네 아이들은 그 집 아버지가 무서웠다. 호기심에 대문 앞을 얼쩡거리다 호통 소리에 혼비백..

다섯 景 2018.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