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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 이설야 시집

이설야는 첫 시집부터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시인이다. 이름부터가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처럼 들린다.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남자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폭포 아래서 무예를 닦고 여자는 남자를 기다린다. 그 세월이 근 10년이다. 시집은 제목부터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요즘 시집답지 않게 아주 서정적인 제목이다. 다소 무겁지만 이런 시집은 제목이 시집다워서 좋다. 요즘 영화든 책이든 일단 튀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한심한 제목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니면 잘 팔리는 책과 혼동하기 쉽도록 적당히 닮은 이름을 지어내기도 한다. 그러니까 화끈하게 튀거나 잘 팔리는 말랑말랑한 제목에 적당히 묻어 가거나다. 책장사도 먹고 살아야겠지만 내용과 전혀 부합되지 않고 정체성까지 혼란스럽게 하는 제목은 삼..

네줄 冊 2018.09.16

맛의 배신 - 유진규

이 책을 통해 진짜 맛에 대한 배신을 제대로 알았다. 내가 먹은 음식이 모두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무심코 먹는 음식이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데 오늘은 한 끼 정도 가볍게 먹고 이 책에 집중해 볼 일이다. 바나나 우유에는 바나나가 몇 개쯤 들어 갔을까. 딸기 우유에는 딸기가 몇 개쯤 들었는가. 100% 오렌지 주스 한 잔에는 오렌지가 두 개쯤은 들어갔겠지. 결과는 아니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터무니 없다. 모두 인공적으로 만든 가짜 향으로 맛을 낸다. 이쯤 되면 음식의 배신이라 해도 되겠으나 우리는 매일 수십 가지의 인공향을 입으로 넣고 있다. 저자는 SBS, EBS 등에서 활약한 환경 다큐 전문 PD였다. 중년이 되면서 배가 나오는..

네줄 冊 2018.09.12

달밤 그 집 앞을 지나다 - 허림

달밤 그 집 앞을 지나다 - 허림 참깨를 베어 멍석에 둘둘 말아 지게에 지고 저녁 햇살이 떨어진 길을 걸어 내려온다 검게 그을린 담장을 돌아 별이 길게 꼬리치며 떨어진다 어린 시절 강물 위로 물수제비뜨듯 불똥을 튀기며 떨어지는 별을 주우러 간 날도 있었다 자서전을 풀어내는 문장 뒤에는 햇살 반짝이는 무늬가 있다 제삿날 저녁이면 달빛처럼 어른대는 기억을 더듬느라 나이든 고모들은 안방에 둘러앉아 헛헛한 삶을 풀어놓고 아재들은 흐린 기억에 덧칠하며 술독을 비우고 나는 슬그머니 툇마루에 나앉아 약과나 깨다식을 먹으며 전설의 별들을 바라보곤 했다 문간에 흰둥이가 무거운 목줄을 끌며 일어나고 밥통이 뒤엎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전등을 비추자 인광 시퍼런 눈알이 둥글리며 내게로 건너왔다 섬뜩하니 뿜어대는 빛의 기억 ..

한줄 詩 2018.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