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엔 꿈을 꿔도 될까요 - 문무병 올 가을엔 꿈을 꿔도 될까요 - 문무병 또 한 해 바람으로 살았으니, 흔들리는 마음 독하게 다스리며 살겠다고, 9월의 둘째 일요일 태풍의 길목에서 나는 당신을 꿈꾸지 말자는 메모를 남기고 나 멀리 떠나려 했지만, 갈 곳이 없었습니다. 꿈을 버리니, 삭막했어요. 시는 더욱 멀어집디다. .. 한줄 詩 2018.09.30
허공의 힘 - 이광복 허공의 힘 - 이광복 마악 나뭇가지 사이로 발을 내뻗어 나뭇잎마다 발자국을 환하게 찍고 있는 아침 해를 바라보다 문득 저 텅 빈 허공이 해의 발자국을 나뭇잎까지 끌고 온 길이었음을 본다 그 길 위로 또 하루 고단한 삶을 묻으며 가볍게 발을 내딛는 한 무리의 새떼들 스스로 제 몸을 .. 한줄 詩 2018.09.30
가을의 속도, 어디쯤 왔을까 요즘의 가을은 늦게 왔다가 빨리 간다. 9월 중순을 넘어도 한낮에는 완전 여름 날씨다. 늦더위 기세에 눌려 오기를 망설이던 가을은 어느 날 갑자기 자리를 잡을 것이다. 코스모스는 이미 가을 맞이 준비를 했다. 고추잠자리도 좋아라 춤을 준다. 늑장을 부리다 올 때는 더욱 속도를 빨리 내는 가을, 갈 때도 서둘러 떠난다. 그만큼 가을은 짧아졌다. 올 가을은 얼마의 속도로 오고 있는가. 가을은 길에서 온다. 코스모스 핀 들녘의 길을 따라 온다. 오길 망설이는 가을을 데리고 그런 길을 걸었다. 어제보다 해가 조금 짧아졌다. 다섯 景 2018.09.29
난경파독(難境破毒) - 백인덕 난경파독(難境破毒) - 백인덕 저녁은 멀고 비가 내릴 것 같아 거리로 나갔다. 팔 하나 잘라 던지려고, 묻어버리려고, 어디쯤 녹슨 입간판 위 올려놓으려고, 아무데나 높이 걸어놓으려고, 비는 여전히 멀고 저녁이 올 것 같아 함부로 나선 거리를 쏘다녔다. 울어라, 새여 비 올 것 같은 저녁.. 한줄 詩 2018.09.29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 심재휘 시집 이번 연휴 며칠 간의 여행길에 줄곧 배낭 속에 들어 있던 시집이다. 얼마전에 구입한 몇 권의 시집 중 단연 빼어난 시집이어서 망설임 없이 배낭에 넣었다. 버스에서, 숙소에서,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터미널 대합실에서 반복해서 읽었다. 몇 편의 시는 서너 번씩 읽었을 것이다. 요즘에 나온 시집 중에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여러 번 읽고 싶은 시집이 몇 권이나 될까. 갈수록 좋은 시집을 만나기 힘든 시대다. 독자와의 소통보다 당선되기 위해서나 아니면 상을 타려는 목적인지 평론가들 눈에 들기 위해 쓰다 보니 도무지 뭔 소린지를 모르겠는 시가 지천이다. 심재휘의 시는 일단 이해하기 쉽다. 탈고를 거듭해 긴 시간 다듬어진 싯구들이 잘 숙성되어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최신 유행의 언어보다 지난 세월을 잘 견뎌낸.. 네줄 冊 2018.09.29
보도블록은 죄가 없다 - 박대근 독특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서점엘 갔다가 제목에 집어들어 몇 장 들추면서 결정했다. 읽어 봐야겠다는 결심은 짧은 순간이었다. 내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매일 밟고 다니는 것이 보도블록 아니던가. 내 발바닥과 가장 가까운 것도 보도블록이다. 내가 보도블록에 관심이라곤 기껏 해마다 멀쩡한 벽돌을 뜯어내고 새로 까는 작업을 반복한다는 신문기사 정도였다. 예산을 미처 소진하지 못하면 이듬해 그만큼 자치단체 예산이 깎이기 때문에 일단 돈을 전부 쓰고 보자는 생각에 그런 작업을 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서울기술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는 도로 포장 전문가 박대근 박사가 쓴 책이다. 실제 서울시 도로담당 공무원으로 10년간 일한 공무원 출신으로 이쪽 분야 전문가다. 아마도 도심 인도에 관한 책은 처음이지 싶다. .. 네줄 冊 2018.09.28
1박 2일 군산 여행 군산은 여러 번 갔던 도시지만 갈 때마다 새롭다. 터미널 건물 2층에 있는 다방도 그대로다. 스타벅스 커피 마시면 세련된 것이고 다방 커피 마시면 구닥다리인가. 군산의 변하지 않는 모습처럼 다방 커피의 맛도 그대로다. 시외버스 터미널 가까이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다. 반면 군산역은 한참 떨어져 있다. 어느 도시를 가던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깔끔하고 세련된 것보다 오래 되고 낡은 것들이다. 점점 짧아지는 가을 해가 어느덧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제일 먼저 경암 철길 마을로 갔다. 이곳도 가을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고 옛날로 돌아가 본 커플이 정답다. 군산기점,, 이 간판이 무슨 뜻인지 잠시 생각했다. 각종 깃발을 파는 가게라는 뜻이다. 저물어 가는 포구를 찾았다. 군산항은 좀 더 내려가야 나.. 여섯 行 2018.09.28
오지 않느냐, 꽃샘 - 황학주 오지 않느냐, 꽃샘 - 황학주 이 들판에서 하루 자고 깨어 봐라 모래 언덕 좀처럼 강이 나오지 않는 땅을 다 지나 바람은 극성스럽게 찢어지며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문턱에다 소리도 치고 디딜 새 없이 오지 않느냐 네가 오면 너의 연애도 오겠지 아들을 더듬어 거기를 슬쩍 만져도 보고 .. 한줄 詩 2018.09.28
봉분이 있던 자리 - 심재휘 봉분이 있던 자리 - 심재휘 바람 부는 날 강릉 송정의 해송숲에 가면 뒤척거리는 평지가 있다 한때 무덤이었던 것들 바닷가 주인 없는 땅의 허물어진 봉분들 순두부 한 그릇 먹고 나와 마을의 끝에 걸린 저녁을 혼자 걷다보면 해송숲에 가득 고여 있는 파도 소리가 바람 소리 같아서 죽어.. 한줄 詩 2018.09.28
탑골 공원에서 노인들을 보다 - 정병근 탑골 공원에서 노인들을 보다 - 정병근 그 누구도 주름의 감옥을 탈출할 수 없다 독방에 갇힌 소년이 울고 있다 발버둥칠수록 밖에서 잠긴 세월의 문은 더 완강하다 이젠 정말 막다른 골목이다 믿어지지 않는 듯, 지친 소년은 천정을 쳐다보며 두런두런 혼잣말을 한다 텅 빈 목소리로 通.. 한줄 詩 2018.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