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꿈 - 박두규 순례의 꿈 - 박두규 어두컴컴한 새벽 자귀나무 그늘 어디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터는 그대 어둠 저편 가파른 북벽의 경사면을 걷는다 정처 없는 두려움이 앞장섰을 것이다 언제나 두려움은 물소리처럼 떨어질 것인가 하루 내 끌려온 길은 꽁꽁 묶인 채 밤새도록 비를 맞고 길에 묶인 그.. 한줄 詩 2018.10.06
시월은 또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 이기철 시월은 또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 이기철 시월의 맑고 쓸쓸한 아침이 풀밭 위에 내려와 있다 풀들은 어디에도 아침에 밟힌 흔적이 없다 지난 밤이 넓은 옷을 벗어 어디에 걸어놓았는지, 가볍고 경쾌한 햇빛만이 새의 부리처럼 쏟아진다 언제나 단풍은 예감을 앞질러 온다 누가.. 한줄 詩 2018.10.06
허수아비는 어디에 있는가 어렸을 때 가을이면 들녘에는 어김 없이 허수아비가 세워졌다. 지푸라기로 만든 사람 모형에 헌 옷가지를 입고 모자를 쓴 허수아비가 대부분이었다. 허수아비 생김새는 각양각색이었다. 논 임자의 예술성도 엿볼 수 있는 특색 있는 허수아비였다. 때론 빈 깡통을 줄에 매달아 흔들기도 했다. 곡식을 지키려는 농부와 영악한 참새와 싸움은 가을 내내 계속 되었다. 이번 가을 들녘을 걸었다. 한창 익어가는 논에 참새들이 그냥 지나갈 리 만무하다. 올해도 농부와 참새의 줄다리기가 시작 되었다. 그런데 서 있는 허수아비는 없고 날아 다니는 새 모형이 대부분이다. 이곳만 그러는지는 다른 곳을 가 보지 않아 모르겠다. 시대에 따라 허수아비도 바뀐 모양이다. 시중에 파는 것을 사다가 달면 되니 간편하기는 하겠다. 가벼운 비닐 재질.. 다섯 景 2018.10.05
흔들의자 위의 시간 - 서상만 흔들의자 위의 시간 - 서상만 아무도 모른다, 한 시절 난지도의 새는 가슴에 적동색 꼬리표를 달고 쓰레기 더미에서 넝마를 줍고 그런 날은, 가을꽃도 신음 소릴 내며 말라갔다 날지 못하는 쓰레기장의 새 나는 법도 몰라, 숨 가쁘게 깃털만 뿌리며 아프게 울었다 나를 기다리며 아내는 잠.. 한줄 詩 2018.10.05
살아 있다는 것의 한 움큼 - 성선경 살아 있다는 것의 한 움큼 - 성선경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늘 누군가 쥐여 주는 한 움큼의 덤으로 숨 쉬는 것 나는 태어나자마자 장손의 이름을 덤으로 받았다 숨 쉬고 두 발로 걷고 학교를 마치고 결혼을 하고 내 살아가며 받는 덤 중에 제일 큰 것 아들과 딸을 덤으로 받았다 지난봄 화.. 한줄 詩 2018.10.05
들꽃을 보며 - 김완하 들꽃을 보며 - 김완하 가을 볕 속에서 색을 바꾸고 힘없이 지는 저 나뭇잎 보면서 나는 더 이상 이 세상 들꽃 외에는 마음 주지 않기로 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던 그대 말씀 한여름 타오르던 태양의 약속도 식어 땅에 가슴 드리우기도 전 바람 한 줄기에 뒤척이며 그 약속의 말 부서져 후.. 한줄 詩 2018.10.05
고춧대가 찬이슬에 쇠어가는 저녁 무렵 - 권오표 고춧대가 찬이슬에 쇠어가는 저녁 무렵 - 권오표 쥐똥나무 울타리에 뱀 허물이 상모 끈처럼 걸려 있다 손톱물에 쓸 백반을 찾던 누이가 봉숭아 꽃잎에서 물큰한 비린내가 난다며 울밑에서 따다 모은 꽃잎을 뒤란 귀퉁이에 묻고는 침을 세 번 뱉는다 어린 감나무는 성성한데 늙은 감나무.. 한줄 詩 2018.10.05
힘이 남아도는 가을 - 이덕규 힘이 남아도는 가을 - 이덕규 울퉁불퉁한 고구마 자루를 쏟으니 머리 맞대고 담배 돌려 피우던 고등학생 알머리 같은 것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덩치만 컸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뭘 봐, 그러면서 학교 앞 짱깨집에서 배갈 각 일 병에 자장면 곱빼기 외상시켜 먹고 뿔뿔이 흩어.. 한줄 詩 2018.10.03
사랑의 잔고 - 조연희 사랑의 잔고 - 조연희 그녀는 오늘도 현금인출기 앞에서 사랑의 잔고를 확인한다. 그에 대한 한도를 가늠해본다. 얼마를 견딜 수 있을까. 삶은 영원한 인플레이션 같은 것이어서 그녀의 그리움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남아 있기도 했다. 이용가능 시간도 후배위뿐이어서 그들의 섹스는 불.. 한줄 詩 2018.10.03
코스모스가 있는 들녘 가을만 되면 미치는 성격이다. 어렸을 때부터 코스모스를 좋아했다. 아마도 스무 살 무렵에 코스모스가 내 성격과 무척 닮은 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도 코스모스를 만나면 벌떡 일어서거나 눈동자가 확 커진다. 코스모를 볼 때면 설렘과 서늘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꽃밭보다 들판에 있어야 더 어울리는 코스모스다. 오래 바라보고 싶은 꽃이다. 다섯 景 2018.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