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오동잎 - 전성호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오동잎 - 전성호 친구 수범이는 폐암을 안고 떠났다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고즈넉한 달빛이 심장 같은 오동잎을 촬영한다 밤을 반겨주는 너의 웃음, 나뭇잎들은 한없이 반짝인다 한때 잎사귀처럼 뺨을 비벼대던 우리는 오늘, 무늬를 짜는 오동나무 옆 풀벌레들 곁에서 서러운 세상 이야기를 끝없이 통역한다 처음부터 우리가 헤어지기 위해 만났으련만 이렇게 뿌리 곁에 계곡 물소리 가까운 밤이면 문득, 덧없음만도 아니라는 걸 일러주는 듯 너를 생각하고 누운 네 어깨 너머로 한 패션 디자이너의 바람이 스쳐간다 매미도 울지 않고, 가끔씩 목이 들리는 부엉이 울음소리만 둘이 아닌 내 가슴에 와닿을 뿐 달팽이처럼 천천히 생각하며 네 곁에서 끝내 흔들리고 마는 오동잎 하나 *시집,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