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746

지구에서의 약속 - 이운진

지구에서의 약속 - 이운진 우주를 가로질러 오는 그대가 만약 그라면 나는 지구의 속도로 걸어가겠어 시속 1,674km의 걸음걸이에 신발은 자주 낡겠지만 지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건 사랑을 믿는 이 별의 아름다운 관습처럼 살고 싶어서였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단단한 국경선인 마음을 넘어 천 년 넘은 기둥처럼 그의 곁에 조용히 뒤꿈치를 내려놓는 일이야 눈부신 밤하늘의 정거장들을 지나 지구라는 플랫폼으로 그가 오면 풀잎이 새에게 호수가 안개에게 바위가 바람에게 했던 긴 애무를 맨발로 해 주겠어 그대 마음의 가죽을 깔고 그것으로 나의 정처를 삼게 되면 눈물의 소질을 타고난 나도 잊지 못할 저녁을 가지게 되겠지 먼 훗날 다시 어느 은하의 별까지 날아간 뒤에도 그대와 함께 다녀간 적이 있는..

한줄 詩 2018.11.08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오동잎 - 전성호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오동잎 - 전성호 친구 수범이는 폐암을 안고 떠났다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고즈넉한 달빛이 심장 같은 오동잎을 촬영한다 밤을 반겨주는 너의 웃음, 나뭇잎들은 한없이 반짝인다 한때 잎사귀처럼 뺨을 비벼대던 우리는 오늘, 무늬를 짜는 오동나무 옆 풀벌레들 곁에서 서러운 세상 이야기를 끝없이 통역한다 처음부터 우리가 헤어지기 위해 만났으련만 이렇게 뿌리 곁에 계곡 물소리 가까운 밤이면 문득, 덧없음만도 아니라는 걸 일러주는 듯 너를 생각하고 누운 네 어깨 너머로 한 패션 디자이너의 바람이 스쳐간다 매미도 울지 않고, 가끔씩 목이 들리는 부엉이 울음소리만 둘이 아닌 내 가슴에 와닿을 뿐 달팽이처럼 천천히 생각하며 네 곁에서 끝내 흔들리고 마는 오동잎 하나 *시집,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 창비..

한줄 詩 2018.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