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꽃이 핀다는 건 - 김창균 그리고 꽃이 핀다는 건 - 김창균 그리고 꽃이 핀다는 건 세상의 모든 졸음을 몰고와 오후의 처마에 내려놓는 봄날에 꽃이 핀다는 건 세상의 금기 같은 것을 깬다는 것 깨고 일어선다는 것 오랜만에 찾아간 친구 집 그 집 작은딸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논둑을 폴짝거리며 뛰어가듯 흙 묻은 .. 한줄 詩 2019.04.10
폐차를 하며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 - 최명란 폐차를 하며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 - 최명란 이십 년 넘게 몰던 차를 폐차한다 그를 폐차장에 버리고 돌아서자 비가 내린다 한 음 내리지 않으면 부를 수 없는 노래처럼 끼익끼익 있는 대로 음을 높여 소리 지르기도 하고 가래 걸린 목구멍처럼 꺼억꺼억 숨이 차오르기도 하는 그를 그래.. 한줄 詩 2019.04.09
봄날의 심장 - 마종기 봄날의 심장 - 마종기 어느 해였지? 갑자기 여러 개의 봄이 한꺼번에 찾아와 정신 나간 나무들 어쩔 줄 몰라 기절하고 평생 숨겨온 비밀까지 모조리 털어내어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과 라일락, 서둘러 피어나는 소리에 동네가 들썩이고 지나가던 바람까지 돌아보며 웃던 날. 그런 계.. 한줄 詩 2019.04.09
청명 - 전동균 청명 - 전동균 오동꽃이 피었다 마당에 가슴뼈 같은 줄을 내걸고 이불을 펼쳐 널었다 먹고살 생각, 여자 생각에 뒤척이던 밤들이 놀라 두리번대다가 이내 공손해진다 모든 빛을 삼키고 내뿜는 자줏빛 불이 타오른다는 건 흙들이 술렁인다는 뜻, 이름 부를 신조차 없는 사람들 많아지고 살.. 한줄 詩 2019.04.08
다시, 봄 - 정창준 다시, 봄 - 정창준 버드 워칭도 하기 전에 계절은 파하고 가임기의 나무들만이 맑고 투명한 수액을 끌어올려 몸을 뒤틀어 난산하는 숲 속, 축축한 안개 너머로 비릿한 새순을 토해 내는 저녁 내내, 젖은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섰지. 차고 깊은 허공 속으로 따뜻한 입김을 낼 수 없는 아.. 한줄 詩 2019.04.08
봄 특집 - 박세현 봄 특집 - 박세현 장편의 겨울이 지나간 자리 꽃들 피었다 다 지나가지 못하고 버벅대는 겨울의 뒷자리에도 꽃들 피었다 올 겨울은 좀 싱거웠단 말이야 몸도 싱겁고 마음도 아픔도 닝닝했다는 말씀 일장춘몽의 한 장면을 싱싱한 허구로 틀어막기 위해 푸석한 몸에 봄을 섞고 눈치껏 문지.. 한줄 詩 2019.04.07
그날부터 지금까지 - 황학주 그날부터 지금까지 - 황학주 찬비 내리는 장지에 아픔으로 발전한 사이가 아닌 것처럼 서먹서먹한 묘비명 우산을 쓰고 둘러서서 下棺을 했다 그 다음 어디로 갈 것인지 침묵한 채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사람들 뒤에서 산 벚꽃 두른 봄은 누가 목매단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런 건 아니겠.. 한줄 詩 2019.04.07
파도의 방 - 김수우 파도의 방 - 김수우 선고처럼 붙어 있는 머리맡 사진 동생들과 내가 유채꽃밭에서 웃고 있다 그 웃음 속에서 아버진 삶을 집행했다 깊이 내리고 오래 끌고 높이 추어올리던 그물과 그물들, 그물코 안에 아버지 방이 있었다 기관실 복도 끝 비린 방, 종이배를 잘 접던 일곱 살 눈에도 따개.. 한줄 詩 2019.04.06
보살사 뒷산으로 세월이 간다고 - 류정환 보살사 뒷산으로 세월이 간다고 - 류정환 그 농담 같은 굽잇길을 어떻게 다 지나왔을까 보살사 극락보전 앞마당에 서서 중얼거리다가 뒷산으로 가는 세월을 보았다며 그대는 쓸쓸하게 웃었지요. 세월은 아마 산을 넘어간 모양이지요. 잠깐 낮잠에 든 그대의 배낭을 훔쳐 들고 달아나는 동네 악동같이 재빨라서 한달음에 훌쩍 산등성이를 넘어갔을 테지요. 그 길을 따라 꽃이 피고 지고 낙엽이 흩날려도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아서 엊저녁 산을 넘어간 목탁소리처럼 산 너머 마을에서 무심코 같은 짓을 되풀이할 걸 알아서 그대는 여기 남아 헛헛하게 웃지만 산을 넘어가며 배낭을 뒤져 빈속을 들여다보고는 세월 또한 쓸쓸하게 웃었을 테지요. *시집, 상처를 만지다, 고두미 손금 - 류정환 이놈의 강은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오랜 가뭄으.. 한줄 詩 2019.04.06
생에 처음인 듯 봄이 - 조용미 생에 처음인 듯 봄이 - 조용미 현통사 앞 물가의 귀룽나무는 흰 꽃을 새털구름처럼 달고 나타났지 귀룽나무, 나는 놀라 아 귀룽나무 하고 비누방울이 터지듯 불러보았지 귀룽나무, 너무 일찍 꽃 피운 귀룽나무 귀룽나무 물가에 가지를 드리우고 바람결에 주렁주렁 흰 꽃향기를 실어 보내.. 한줄 詩 2019.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