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꽃이 핀다는 건 - 김창균
그리고 꽃이 핀다는 건
세상의 모든 졸음을 몰고와 오후의 처마에 내려놓는
봄날에 꽃이 핀다는 건
세상의 금기 같은 것을 깬다는 것
깨고 일어선다는 것
오랜만에 찾아간 친구 집
그 집 작은딸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논둑을 폴짝거리며 뛰어가듯
흙 묻은 맨발로 안방을 걷듯,
그렇게 작고 여린 것 하나를 거역하는 것.
베란다 화분 흙을 다 갈아 치우며 흔적을 털며
그렇게 옹색하게 다시 살림을 차리는 것.
그늘 쪽에 있던 화분 몇 개를 양지쪽으로 옮기며
내년에는 오래 산 이 낡은 집을 이사하고 싶다고
말하는 아내의 펑퍼짐한 등짝을 보며
하! 꽃이 진다는 건
꽃이 진다는 건
생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는 벅찬 말씀.
*시집, 먼 북쪽, 세계사
단풍 - 김창균
그대를 밀며 산에 오른다
산협을 돌아가는 나도
그 곁 아슬아슬
절벽에 평생을 건 너도
다 햇볕이 건너뛴 자리마다 붉다
긴 빨대 같은 길
잘게 믹서된 인간을 서서히 빨며
산은 점점 붉은 피를 수혈하는데
누군가의 뒷몸을 밀고 가는 나는
단풍 아래서 아프다
마을에 길흉사가 있을 때마다
생의 절정을 건너뛰던 무당처럼
저 원색의 잎들은
제 몸에 주문을 걸며
엄동(嚴冬)까지 견딜 것인데
또, 산 아래 마을에서는
길고 푸른 작두 날을 타는
날이 있겠다.
# 작년 가을, 늙은 벚나무 단풍 아래서 생각했다. 꽃 피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단풍 지는 날이라니,, 곧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오겠지. 이렇게 꽃 피는 봄이 왔다. 앞 다투며 피는 꽃을 보다 생각한다. 꽃 지고 여름 지나면 또 단풍이 들겠지. 세월 참 빠르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일장춘몽 같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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