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특집 - 박세현
장편의 겨울이 지나간 자리 꽃들 피었다
다 지나가지 못하고 버벅대는 겨울의
뒷자리에도 꽃들 피었다
올 겨울은 좀 싱거웠단 말이야
몸도 싱겁고 마음도 아픔도 닝닝했다는 말씀
일장춘몽의 한 장면을 싱싱한 허구로 틀어막기 위해
푸석한 몸에 봄을 섞고 눈치껏 문지른다
신림에서 한 뼘 들어간 산밑
시동 끄고 신경도 눌러놓고 앉아
아무 이론 없이 꿈자리를 들여다본다
작은 꽃들 이름 모르는 꽃들
숫제 이름 지운 꽃들
불러도 제 이름인 줄 모르는 꽃들
사랑스런 저 듣보잡들
다 이리 오시게
나 한번만 안아줘봐!
*시집, 저기 한 사람, 문학의전당
청명 - 박세현
고속도로에서 불교방송 저녁예불을 만난다
기도가 부족했어
녹음된 범종 사이로 톡톡 튀는 빗방울
여기가 어디쯤이지?
이천 지나감 그것 말고
예순셋 봄을 지나간다 옥희? 그렇군
다 살았는데 여전히 살아 있다는 착각
헛몸 꼴린 한국시의 범람처럼 사셨어
혹시 당신의 무의식이 건들렸다면 사과할 용의 있고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불타야중
전반전 끝나고 후반전 끝났는데 무승부인 생애
지금 봄비 맞으며 연장전 진행 중
급한 대로 빗방울에 귀의하자 내게 귀의하기가
그리도 쑥스러웠던 예순 몇 해여
제발, 응답하지 마라
하르르 흩날리던 난설헌 생가 벚꽃들
급히 마시고 떠나왔다
등 뒤로 정신 한 겹 목 넘어가는 소리
청명이라 발음하니 입안이 맑아졌다
벚꽃 날리듯 삶이 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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