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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 - 류정환

상사화 - 류정환 두렷하게 빛나지 않는 일생이라도 한번쯤 혼자 있고 싶은 날 있지. 인적 드문 절집의 뒤뜰이나 반나마 비어버린 산촌 외딴집 마당 한쪽 담담하게 꽃대를 밀어올린 상사화처럼 남의 눈길 의식하지 않고 호젓하게 서서 오래 길을 되짚어보고 싶은 날. 내 삶을 푸르게 떠받쳐 주리라는 세속의 열망도 가볍고 가벼워서 무성한 피붙이들,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라, 일찌감치 봄바람에 전하고는 말간 얼굴로 홀가분하게 느릿느릿 한철 나고 싶은 날 있지. *시집, 상처를 만지다, 고두미 막걸리 사설(辭說) - 류정환 누구나 지나온 내력 늘어놓자면 한이 없을 테지만 내 애기도 소설 한 권으로 모자라지. 인생지사 새옹지마란 말이 맞기는 맞는가, 팔자소관이 있기는 있는가, 이런 탁주 세상을 다시 만날 줄 누가 알았나...

한줄 詩 2019.07.11

흑백영화 상영관 - 이성배

흑백영화 상영관 - 이성배 폭설, 눈이 녹을 때까지 산짐승들과 사람이 길을 같이 쓴다. 식구들 많아 오가는 손님들로 마당까지 환하던 우물 옆 감나뭇집, 빈 집들 사이에서 감나뭇집 할머니 혼자 밤새 낡은 흑백 영화를 튼다. 지붕마다 두툼하게 광목 이불을 덮고 가로등은 서넛, 고라니가 꼭대깃집 헛간 처마에 늘어진 시래기를 뜯는다. 어두침침한 안방 벽에 걸린 빛바랜 가족사진-영화포스터, 함께 찍힌 햇볕은 아직도 고슬고슬하다. 밤새 함박눈은 그치지 않고 쩡 하고 무쇠 솥을 열자 하얀 김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부엌 밖으로 쏟아져 오른다. *시집, 희망 수리 중, 고두미 밤의 거푸집 - 이성배 가장 반짝이는 순간을 담은 액자 하나쯤 걸어보려 했다면 잘못 박힌 못 되돌리기 지난하다는 걸 안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

한줄 詩 2019.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