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분꽃 - 곽재구

마루안 2019. 7. 8. 19:42



분꽃 - 곽재구



화장터 창가에 서서
무지개를 바라보는 사람은
무지개를 꽃병에 꽂아두고 싶었다
멍석 위에 둥글게 모여 앉아
보리수제비를 먹을 때면
돌담 곁 분꽃이 수북수북 피었다
한 그릇 더 먹으렴
수제비는 쉬 배가 꺼진단다
볼 움푹 팬 목소리가 들리고
개밥바라기 곁으로 별똥이 지나갔다
고개 꺾어 보지 마렴
사랑하는 이가 떠나지 못한단다
분꽃 씨앗 하얗게 돌에 찧어
그이의 주름살에 발라주었는데
연소실 불꽃 속에서
툭툭 분꽃이 피어난다
어서 가세요 편지할게요
우체국도 우편번호도 알 수 없는
허공의 창밖에 분꽃이 피고
생수병에 무지개를 꽂는 사람이 있었다



*시집,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문학동네








계란꽃이야 이쁘지? - 곽재구



일요일에도 영업합니다
신화고물상 녹슨 철제 간판 아래
망초 꽃들 옹기종기 피어 있다


녹슨 컨테이너
사무실 안
고물 TV에서 14박 15일 지중해 크루즈 여행
홈쇼핑 광고가 나오는데
종이 박스 계량을 마치고 4,300원을 받은 노인이
크루즈가 뭐여? 묻는다


노인의 리어카가 고물상을 떠난 뒤
한 노파가 종이 박스를 모은
손수레를 밀며 고물상 안으로 들어오고
1분 뒤 허리 굽은 다른 노파가 손수레를 밀며 들어온다
두 손수레 위 종이 박스들이 수북수북 햇살을 받는 동안
허리 굽은 노파가 다른 노파에게 망초 꽃 한 송이를 건넨다
계란꽃이야 이쁘지?


고물 TV에서 폐지 줍는 노인
전수 조사 한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노파들 이쁜 계란꽃 곁에 쭈그리고 앉아
봉지 커피를 마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