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 그대는 안녕한가 - 부정일
혼자 벽 보며 잠들다 이른 새벽 거울을 보네
거울 속에 흰머리 노인이 나를 보네
어느 길가쯤에서 만났던 사람 같은
싸락눈 오다 그친 마당을 서성이네
창 너머 아내가 티비 보는 거실 몇 번 훔쳐보면서
온기 없는 마당만 서성이네
달랑거리던 불알은 이미 없는 듯 쪼그라들고
아버지 귀두 닮은 작은 흔적 주섬주섬 찾아
후미진 구석 몇 방울 흘리고는
아내 외출에 동동거리던 자 안으로 드네
어디를 가시는지 말하지 않네
언제쯤 오시는지 물어보지 못하네
물어본다는 것이 쓰나미 같은 것이어서
무관심해야 할 노인이 감당 못할 일이어서
꽃피던 시절은 이미 익숙해진 절망이어서
이제는 다 내려놓고 절망마저 다독일 때
하찮은 외로움이야 공원 어디쯤
사연 많은 사람들 모여 있는 곳에 가면 될 일
벗이여 어쩌다 그대 날 찾아오신다면
봄이 오면 나 그곳에 있겠네
벗, 그대는 안녕한가
*시집/ 멍/ 한그루
그 친구가 대세네 - 부정일
172로 알고 있었네
건강검진받을 때
키 재는 막대기가 머리를 내리쳐 169라 알려주기 전에는
세 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허구한 날 만 보 넘게 걸어도
3이 어디로 사라진 현실에는 기가 막힐 뿐
어쩌겠는가
그래도 오늘처럼 노을이 환장하게 고운 날
영문 모른 채 늙어가는 쪼그라든 인생들을 불러
막걸리라도 한잔하며 위로하고 싶네
이보게 친구
자네 키는 그대로 안녕한가,
눈 깜박하고 보니 사라지지 않았는가
내 할머니가 아담하게 작았던 모습이 생각나는 건
그 작은 키마저 쪼그라들어 그랬던 것 같아 짠한데
작아진다는 건, 비우는 것
이다음 먼 길 가야 할 때
담고 갈 그릇도 작아 가벼워서 좋겠네
친구여 다 고만고만했던 시절
찬물에 된장 풀어 보리밥 양푼만 박박 긁던
크려야 클 수 없던 시절은 갔네
시방은 커서 외로웠던 친구
사다리 없이 알전구 바꿔 끼우던 멀대
그 친구가 대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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