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이력서 - 성은주
최초의 거짓말은 여섯 살 놀이동산에서 시작됐다
엄마는 내 손에
풍선 끈을 쥐여주었다
놓치지 마
정말 먼 곳으로 사라지는지 궁금해서
일부러 풍선 끈을 놓았다
엄마 원피스 자락을 붙들고
혼날까 봐
더 크게 울며
놓친 척했다
캉캉춤을 추던 무용수가
내 최초의 거짓말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 후로 종종 거짓말할 때마다
속치마 들썩이듯
넘어지는 꿈을 자주 꿨다
*
함께 차 타고 커브를 돌 때 연인의 머리카락도 길어졌다
우리의 교집합에
또 다른 동그라미가 빗금을 쳤다
당신은 너무 아래에 있어요
계속 그어지던 선
지우는 방법을 몰랐다
긴 통로에서 과일 껍질처럼 앉아 있는
당신을 내가 지워 놓고
당신이 날 떠났다고
슬픈 척했다
갓 지은 쌀밥에서 따뜻한 김이 올라올 때
금방 식을 거라 생각했다
매일 같은 이별을 떠들던 내가
분장이 번져
불쑥 그 사실을 들킬 때가 있다
*시집/ 창/ 시인의일요일
백색 소음 - 성은주
공기가 흐르는 소리를 만진다
허기진 방향 껴안고 미끄러지는 달
손가락 사이 노란 연필로 가늘게 당신을 그려 본다
밤길 걷다 마주친 등나무처럼
당신이 내게 처음 보여 준 흑백그림
공중에서 머뭇거리는 리듬으로 춤추다가
조각조각 흩어질 때
뾰족해질 때
점점 검게 물드는 방 안이 무서워
눈물이 났지
살갗에 닿는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는 시간이야
배 속에 있을 때처럼 눈 감고 한참 웅크려 우는데
귀가 자라던 시절
세상에서 제일 편한 방에서
수집했던 소리
가장 많이 듣던 소리
지금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금은 다시 들을 수 없는
물컹물컹한 지층을 서성이는 음파를 닮았지만
날 사랑할 수 있다는 입술로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하는 당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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