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상화서 - 류성훈 봄은 한 번도 봄에 이른 적 없고 너무 가벼워 담장 어디에서도 주울 수 없는 발소리가 땡볕 아래의 줄기들을 깨운다 용서 같은 건 받는 쪽보다 하는 쪽이 나을 줄 알았어, 네가 아침을 그렇게 닮은 줄 몰랐던 나는 주전부리 하나 없는 저녁만 닮아 갔다 나무도 링거를 맞는 세상이네 그런 소리나 하면서 기약 없는 인사를 늘려 가면서 우리는 더 가벼운 곳으로 꽃잎들이 다시 하늘로 졸도한 온도계 눈금을 손금처럼 펴 보이는 네겐 모든 상처들만 유채색이었다 밀과 보리가 자라듯 우리는 무한히 자랄 줄 알았지 다르게 자란 건 죄야, 나는 너를 탓하고 너는 봄을 탓하며 젖은 잎을 주웠다 웃으면서, 웃으면서 끼워 놓은 책은 다시 펴지 말자 아무리 걸어도 마주치지 않을 계절 앞 봄,이라는 말은 더 근질근질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