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여관, 그리고 한 평생 - 심재휘 편지, 여관, 그리고 한평생 - 심재휘 후회는 한평생 너무나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 시장 입구에서는 우체통이 선 채로 낡아갔고 사랑한다는 말들은 시장을 기웃거렸다 새벽이 되어도 비릿한 냄새는 커튼에서 묻어났는데 바람 속에 손을 넣어 .. 한줄 詩 2013.03.15
절교 - 전윤호 절교 - 전윤호 이제 내가 죽을 만큼 외롭다는 걸 아는 자는 없다 그대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짐을 챙긴다 밖으로 통하는 문은 잠겼다 더 이상 좁은 내 속을 들키지 않을 것이다 한잔 해야지 나처럼 보이는 게 전부인 사람들과 정치를 말하고 역사를 말하고 비난하면서 점점 길어지는 밤을 .. 한줄 詩 2013.03.09
텅 빈 충만 - 고재종 텅 빈 충만 - 고재종 이제 비울 것 다 비우고, 저 둔덕에 아직 꺽이지 못한 억새꽃만 하얗게 꽃사래치는 들판에 서면 웬일인지 눈시울은 자꾸만 젖는 것이다 지푸라기 덮인 논, 그 위에 내리는 늦가을 햇살은 한량없이 따사롭고 발걸음 저벅일 때마다 곧잘 마주치는 들국 떨기는 거기 그렇.. 한줄 詩 2013.03.03
내 쪽으로 당긴다는 말 - 정철훈 내 쪽으로 당긴다는 말 - 정철훈 새벽이 차다 내가 자고 나온 방을 질질 끌고 나온 것 같은 새벽이다 동아줄을 어깨에 감고 무언가를 끌고 있는 느낌 일리야 레삔의 그림에서 배를 끄는 노예들 가운데 내가 끼어 있는 것 같다 실은 아무 것도 끌지 않는데 내 쪽으로 끌어당겨지는 무언가가.. 한줄 詩 2013.02.27
새벽의 낙관 - 김장호 새벽의 낙관 - 김장호 밤샘 야근을 끝내고 난곡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낙엽을 털어내며 새벽바람이 일어나고 버스는 봉천고개를 넘어온다 신문배달 나간 둘째는 옷을 든든히 입었는지.... 텅 빈 버스 창가에 부르르 몸을 떨며 엉덩이를 내려놓는다 방금 누가 앉았다 내렸을까, 연탄 크기.. 한줄 詩 2013.02.24
슬퍼하지 마라 곧 밤이 온다 - 홍윤숙 슬퍼하지 마라 곧 밤이 온다 - 홍윤숙 슬퍼하지 마라 곧 밤이 온다 그러면 창변에 밀감빛 등불 켜지고 미뤄둔 편지 한두 줄 더 적어놓고 까마득한 시간 저편에서 가물가물 떠오르는 달빛 같은 얼굴도 만나지 않으랴 먼 강물 흐르는 소리 아득히 쫒아가다 고단한 잠에 들면 잠 속에서 그리.. 한줄 詩 2013.02.23
동행 - 배문성 동행 - 배문성 내가 비로 내려 땅을 적시고 흙 속으로 들어가 어두운 돌 속까지 스며들어 당신께 갈 수 있다면 당신이 가리킨 산목련 한 송이라도 피워줄 텐데 스미는 대로 손을 내밀어 얽힌 돌은 가두고 착한 흙은 모아서 젖을수록 부드러운 땅을 내놓으면 그 곳에 따뜻한 햇살이 찾아오.. 한줄 詩 2013.02.23
유전자는 그리워만 할 뿐이다 - 이문재 유전자는 그리워만 할 뿐이다 - 이문재 -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오늘 하루도 영 정갈하지 못하다 어제는 불길했고 또 그저께는 서툴렀다 가끔 계절이라는 것이 이 도시를 들렀다 간다 신기하다 나른해본 지도 오랜만이다 피곤으로 단단해지는 퇴적암들 나이에는 다들 금이 가 있다 비둘.. 한줄 詩 2013.02.15
마흔여섯의 길 건너기 - 권오표 마흔여섯의 길 건너기 3 - 권오표 청맹과니 청맹과니 눈보라 속을 지등(紙燈) 하나 들고 절뚝거리며 가는 사내 *시집, 여수일지, 문학동네 마흔여섯의 길 건너기 2 - 권오표 갓길 없음 안개 주의 마흔여섯의 길 건너기 1 - 권오표 서둘지 마, 이젠 가보는 데까지 가보는 거야. 어차피 돌아가.. 한줄 詩 2013.02.10
시래기 한 움큼 - 공광규 시래기 한 움큼 - 공광규 빌딩 숲에서 일하는 한 회사원이 경찰서까지 끌려 갔다 점심 먹고 식당 골목을 빠져 나올 때 시멘트 담벼락에 매달린 시래기를 한 움큼 빼어 냄새를 맡다가 식당 주인에게 들킨 것이다 "이봐, 왜 남의 재산에 손을 대!" 반말로 호통치는 주인에게 회사원은 미안하.. 한줄 詩 2013.02.09